다카이치 지명 '불투명'…경주 APEC '돌발 변수'
총리 지명 투표 '지연'…야당 '분열'에 기댄 '경우의 수'
이 대통령, 실용외교 다시 시험대…한·일 관계 분수령
2025-10-12 16:30:00 2025-10-12 16:30:00
[뉴스토마토 한동인·차철우 기자] 이달 말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일 관계에 돌발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애초 이재명 대통령은 경주 APEC 정상회의 계기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 총재와 첫 대면할 예정이었습니다. 일본의 첫 여성 총리로 사실상 내정된 다카이치 총재는 강경 보수이자 극우 성향 인사로, 과거사와 독도 문제 등에 대해 강경 발언을 쏟아낸 바 있습니다. 하지만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자민당과 결별을 전격 선언, 경주 APEC 정상회의 등 정상외교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어떤 결과든 이 대통령과 첫 만남에서도 별도의 과거사 언급 없이 회담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큰데요.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전 경제안보담당상이 4일 일본 도쿄 자유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후 웃고 있다. (사진=뉴시스)
 
26년 만의 연정 '붕괴'…정권 공백 '장기화'
 
12일 <산케이신문> 등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신임 총리 지명 투표는 이르면 이달 중순, 늦어도 21일 전후로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결선 투표 끝에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을 누른 다카이치 총재는 최초의 여성 총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아베 신조 내각에서 총무상 등을 지내며 정치 경력을 쌓아온 그는 '여자 아베'로 불릴 만큼 자민당 내에서도 대표적 강경파에 속합니다. 
 
이에 따라 당초 예상대로 다카이치 총재가 신임 총리 지명 투표에서 승리한다면 내각에는 우익 성향의 정치인이 대거 포진될 전망이었습니다. 다카이치 내각에는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에 기하라 미노루 전 방위상, 외무상에는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이 거론됐는데요. 이들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극우 성향 정치인들입니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현실이 다카이치 총재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여소야대 구도로 인해 자당은 공명당과의 연정이 불가피한데요. 공명당이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다카이치 총재 당선 직후 강한 불만을 성토하면서 연립정부 탈퇴를 시사했습니다. 
 
결국 일본 차기 총리를 뽑는 의회의 총리 지명 선거도 혼돈에 빠졌습니다. 자민당과의 연정이 예상됐던 공명당이 자당 대표 지지를 선언함에 따라 다카이치 총재는 '경우의 수'를 고려하게 됐습니다. 26년간 이어져온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합이 다카이치 총재의 당선으로 붕괴되면서, 정권의 공백기도 길어질 전망입니다. 
 
일본 총리 지명 선거는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에서 과반을 얻은 후보를 총리로 선출합니다. 만약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한다면, 결선으로 이어지는데 중의원·참의원 투표 결과가 다를 경우 중의원이 우선시됩니다. 중의원 465석 중 자민당은 196석으로, 공명당 24석을 더해야만 절반을 넘길 수 있습니다. 
 
반면 입헌민주당은 148석, 일본유신회와 국민민주당은 각각 35석, 27석을 차지하고 있는데, 야당이 힘을 모으면 다카이치 총재의 총리 선출이 가로막힙니다. 다만 아직까지 3당의 공동 대표 선출 움직임이 더딘 상황이라 총리 지명 선거까지의 연합을 지켜봐야 합니다. 
 
때문에 다카이치 총재는 야당의 분열을 노리거나, 과반 표를 넘기기 위해 야 3당 중 협력이 가능한 국민민주당과의 연정을 노려야 합니다. 
 
만약 일본 총리 선출이 지연될 경우 다카이치 총재가 APEC에 정식 총리 자격으로 참석하지 못하거나, 이미 총리 사퇴를 선언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대신 참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3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한일 공동언론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과거사 후순위 의제…앞으로도 난항 예고
 
만약 다카이치 총재가 힘겹게 총리로 임명된다고 하더라도 한·일 관계는 여전히 험로가 예상됩니다. 이 대통령이 지난 8일 일본 방문 당시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는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을 통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부산을 찾은 자리에선 "(한국과) 관계를 불가역적으로 되돌리지 말고 발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차기 내각에 당부한 바 있습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총리와 세 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뒤 '셔틀외교'도 복원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 대통령은 미래 지향적 협력 등 다방면으로 일본과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습니다. 
 
하지만 다카이치 총재는 역사 영토 등에 문제에 대해 극우 진영을 대변하는 입장을 가진 인사로 분류됩니다. 일본군 '위안부', 일제 강제 동원 노동자 문제 등 한국과 일본 사이 과거사 문제에서 우익 성향의 역사관을 가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지난달 27일 자민당 총재 선거 토론회에서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 행사에 내각 장관이 당당히 참석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APEC 계기 한·일 정상회담에선 과거사와 영토 등 문제에 대해선 별도 언급 없이 마무리, 양국 입장은 당분간 평행선을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 기치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를 전망입니다. 특히 다카이치 총재의 극우적 행보가 이어질 경우, 우리 정부의 대응도 불가피합니다. 결국 이시바 총리와 형성한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라는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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