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100명 논란'이 남긴 불안감
2025-05-27 06:00:00 2025-05-27 07:58:13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어제 오전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예상대로 결론 없이 2시간 만에 끝났습니다. 대선 뒤로 회의를 연기했다고 합니다. 연기한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법관회의의 입장 표명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이런 우려,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그런 세심한 우려를 하는 법관회의가 그보다 더 심각한 ‘대법원의 선거 개입’에 대해서는 왜 우려하지 않는 것인지, 그게 의문일 뿐입니다.
 
대선 이후 법관회의가 열리더라도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한 의미 있는 결론을 내놓을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대법원의 대선 개입 논란에 대한 의견은 대선 전에 밝혀야 그나마 의미가 있습니다. 대선 이후엔 전형적인 ‘뒷북 의견’이고, ‘눈치보기 행태’라는 비판을 받기 딱 좋습니다. ‘머리 좋은’ 판사들이 그걸 모를 리 없습니다. 다음 회의는 적당한 양비론을 채택하며 끝날 겁니다. 이번 법관회의는 판사들에게 스스로 성찰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자정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사법개혁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 대선을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그를 바탕으로 사법개혁을 주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당의 행보 역시 영 미덥지가 않다는 점입니다. ‘조희대의 급발진’을 비판하려면, 자신은 안전운행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때론 폭주하고, 때론 갈지자 행보로 보는 이들을 불안하게 합니다.
 
다행히 어제 민주당이 이른바 ‘비법조인 대법관 임명 법안’과 ‘대법관 100명 증원 법안’을 철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두 법안은 그동안 대법원장을 겨냥한 청문회, 탄핵, 특검 등 사법부 압박 공세의 ‘끝판왕’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대법관 30명 증원을 논의하다, 갑자기 100명으로 사이즈를 키웠습니다. 여기에 더해 변호사 자격이 없어도 된다는 법안까지 낸 것이죠. 대법관 증원이 도박판의 “묻고 더블로 가”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합니다. 극단적 사례이긴 하지만, 윤석열도 의대 증원을 그런 식으로 즉흥적으로 ‘베팅’했다가 화를 자초했습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0월 대법원 산하에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사법개혁위원회를 설치해 1년3개월 동안 개혁 의제를 논의했습니다. 그 다음엔 2005년 1월에 대통령 직속 사법개혁추진위원회를 만들어 2년 이상 관련 입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로스쿨과 국민참여재판, 공판중심주의 도입 등이 그 결과물입니다. 그렇지만 기득권과 보수당의 저항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대법관 증원 및 고등법원 상고부 도입 등은 뜻을 이루지 못했죠. 사법개혁은 그만큼 어렵고, 또한 지난한 작업입니다.
 
만약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면, 민주당은 행정부와 의회 권력까지 쥐게 됩니다. 그 어떤 정부보다 빠르고 강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반대로 그만큼 ‘독주’와 ‘독선’에 대한 우려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대법관 100명 법안’ 등에 대해 “발의에도, 철회에도 관여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설득력은 부족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더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후보나 당의 입장도 아닌데, 이런 식의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일방적인’ 법안을 남발하는 정당이 미더울 리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은 대책 없이 ‘힘자랑’만 하는 집단을 무척 싫어합니다. 민주당은 내내 겸손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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