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26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촉발·개최된 전국법관대표회의(이하 법관회의)가 2시간 만에 결론 없이 종료됐습니다. 회의에서 논의된 이야기들이 자칫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겁니다. 대신 현장에서 안건 5개를 추가 상정했고, 대선 이후에 회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인 김예영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가 26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해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법관회의는 이날 오전 10시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렸습니다. 전체 법관 대표 126명 중 과반수 이상인 88명 출석으로 회의가 시작됐습니다. 이 가운데 현장에 참석한 인원은 18명입니다. 온라인으로는 최초 70명이 접속·참석해 정족수가 채워졌습니다. 이날 회의에서는 기존 발의된 안건 2건에, 추가로 5건을 상정하고 의결 없이 회의를 종료했습니다. 개회부터 종료까지 걸린 시간은 2시간 정도입니다.
이번 법관회의는 지난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걸 계기로 촉발·개최됐습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상황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확보할 방안을 논의하고, 재판에 대해 제기된 책임 추궁 등 우려를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조기 대선을 8일 앞둔 상황에서 회의의 결과가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고, 서둘러 회의를 마친 겁니다.
법관회의 관계자는 “대선 이후 회의를 속행하기로 했다”며 “최근 대선에서 사법개혁이 의제가 되면서 법관대표회의 의결과 입장 표명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법원 안팎의 우려가 커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대선 이후 회의 속행에 대해선 온·오프라인 참가자 90명 중 54명이 찬성했습니다. 회의 방식은 전면 원격으로 의결됐습니다. 회의 관계자는 “여러 우려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속행 여부를) 의결하자는 말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날 추가된 안건들에선 △사법신뢰 훼손 △재판의 독립 △정치의 사법화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법관회의 관계자에 따르면, 우선 “특정 사건의 이례적 절차 진행으로 사법 독립의 바탕이 되는 사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것을 심각하게 인식한다”는 안건이 상정됐습니다. 동시에 “개별 재판을 이유로 한 각종 책임 추궁과 제도의 변경이 민주국가의 핵심요소인 재판독립을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깊이 우려한다”는 내용도 안건에 포함됐습니다.
이는 기존 안건들보다 구체화된 겁니다. 기존 안건은 “재판독립은 절대적으로 보장돼야 할 가치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 바탕인 재판의 공정성과 사법의 민주적 책임성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할 것”과 “사법 독립의 바탕이 되는 사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것을 심각하게 인식한다”였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취지 파기환송 판결에 관한 구체적 언급을 피했던 겁니다. 이날 추가된 안건에선 '특정 사건의 이례적 절차 진행', '개별 재판을 이유로'라는 식으로 이 후보의 판결을 우회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대표 법관들은 안건을 통해 대법원의 “전례 없는 절차 진행”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사법부 독립에 심각한 침해를 초래할 정치적 시도들”에 대해서도 우려와 반대를 나타냈습니다. 특히 “판결에 대한 비판을 넘어 판결을 한 법관에 대한 특검, 탄핵, 청문절차 등을 진행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임을 천명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한다”는 안도 상정됐습니다.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도 나왔습니다. 법관 대표들은 “정치적 영역에서 해결할 문제가 법원의 재판 사항이 되고, 재판의 결과가 곧 정치가 된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가 이 시기 법관 독립에 대한 중대한 위협요소임을 인식한다”는 내용의 안도 상정했습니다.
법관 대표들은 대선 이후 새로 날짜를 잡아 상정된 안건들에 대한 보충토론을 거쳐 의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상정된 안건은 토론 절차를 거쳐 수정, 철회될 수 있습니다.
법원 안팎에서 법관회의에 크게 기대를 거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한 부장판사는 “조희대 대법원장 이우 법관대표회의가 유명무실해졌다. 투표로 대표 법관을 뽑긴 하지만 주로 막내들이 떠맡는 분위기”라면서 “어쨌든 이 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동료 판사에게 부담을 주는 의견은 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관회의에서 사법부 자체 개혁에 대한 논의는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결국 사법부 독립과 사법신뢰 회복을 위한 입장 정도의 의견을 내지 않을까 싶다”며 라고 지적했습니다.
경기 고양=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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