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무죄’는 공수처 탓? 판결문 본 법조계 “법원 잘못 90%”
뇌물-직무관련성 인정하면서도 '무죄'
뇌물죄인데 ‘부정한 청탁·행위’ 판단
법조계 “법원, 검찰 범죄 눈 감아줘”
2025-05-16 17:43:05 2025-05-16 17:46:03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1호 기소’로 주목받았던 ‘스폰서 검사’의 뇌물수수 사건이 최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로 확정됐습니다. 공수처의 수사력 미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셉니다. 그러나 정작 이 사건의 판결문을 살펴본 법조인들은 “법원 잘못이 90%”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뇌물과 직무관련성을 인정하면서도 뇌물죄 구성요건이 아닌 ‘부정한 청탁·행위’가 없다는 등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옛 검찰 동료에게 수사 편의를 제공한 대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지난해 1월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형준 전 부장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지난달 24일 확정했습니다. 
 
김 전 부장검사는 지난 2016년 3~7월 피의자이자 옛 검찰 동료인 박수종 변호사에게 1093만원 상당의 향응과 현금을 받은 혐의를 받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06년 서울중앙지검에서 연을 맺었습니다. 이듬해 박 변호사가 검찰을 떠난 이후에도 1년에 2~3차례 만나며 친분을 유지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2015년 11월 검사와 피의자로 바뀌었습니다. 김 전 부장검사가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으로 재직하던 때 박 변호사가 연루된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이 남부지검 합수단으로 넘어온 겁니다. 금융위원회가 이첩한 사건입니다. 
 
합수단에서 박 변호사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는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김 전 부장검사와 박 변호사 모두 인정한 사실입니다. 합수단은 2016년 1월12일 박 변호사를 처음 조사했습니다. 이날은 김 전 부장검사가 예금보험공사로 파견을 가기 전 합수단에서 근무하는 마지막날이었습니다. 금융위 조사에 응하지 않던 박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 출석했습니다. 검찰은 박 변호사에 대한 추가 소환조사 없이 2017년 4월 무혐의 처분을 했습니다. 
 
직무관련성 인정됐는데 '무죄'…법조계 “법조카르텔 의심돼”
 
1·2심은 직무와 향응 사이 직무관련성을 인정하면서도 김 전 부장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뇌물죄 구성요건이 아닌 부정한 청탁·행위를 무죄 주요 근거로 들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습니다. 
 
뇌물죄는 공무원 등이 직무에 관해 금품을 받는 것으로 유죄가 성립된다는 게 대법원 판례입니다. 여기에 직무에 관한 청탁이나 부정한 행위가 더해진다면 수뢰후부정처사죄로 더 무거운 처벌을 받습니다. 제3자뇌물죄의 경우도 부정한 청탁·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김 전 부장검사 혐의가 뇌물죄임에도 재판부는 부정한 청탁·행위를 판단한 겁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도 대법원 판례를 들어 “뇌물죄는 직무에 관한 청탁이나 부정한 행위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며 “금품이 직무에 관해 수수된 것으로 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1심 재판부는 공수처의 공소장을 지적하며 부정 청탁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사건을 잘 처리해 달라는 명시 또는 묵시적 청탁을 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며 “그러나 피고인들은 청탁 사실을 부인하고, 청탁을 인정할 증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전체적·포괄적 대가관계의 존재 여부도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공수처 검사가 향응과 직무 사이 포괄적으로 대가관계에 있음을 전제로 이 사건 공소를 제기했다”며 “그러나 특별한 청탁이 있었거나 이 사건 향응과 대가적 관계에 있는 개개의 직무행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검사에게 뇌물수수 인식이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검사가 파견 당시 검사로서 직무와 향응 사이 객관적 의미의 직무관련성은 존재한다”면서도 예보가 외부 공공기관인 점, 검찰과 업무 내용이 다른 점 등을 근거로 “김 전 부장검사가 직무관련성에 대한 인식이나 대가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두 사람의 평소 관계를 고려했을 때 뇌물로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습니다. 박 변호사는 김 전 부장검사의 내연녀, 스폰서에게 돈을 전달하고 이들이 김 전 부장검사에 대해 언론에 제보하지 않도록 관리했습니다.
 
2심을 심리한 서울형사지법 형사5-1부(재판장 구광현 부장판사) 역시 원심이 옳다며 무죄를 유지했고, 대법원도 검찰 상고를 기각해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김 전 부장검사에 대한 판결은 법원이 검찰에 범죄를 눈을 감아준 ‘법조 카르텔’이란 비판이 제기됩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공수처가 부정한 청탁·행위를 공소장에 안 썼으면 좋았겠지만, 썼더라도 법원이 구성요건이 아닌 부분을 판단해선 안 됐다”며 “공수처 잘못이 10%라면 법원 잘못이 90%다. 법조 카르텔이 의심된다”고 비판했습니다. 
 
검사 출신 다른 변호사는 “검사와 스폰서는 사건이 생겼을 때 돈을 주고받지 않는다. 평소 100만원, 300만원씩 챙기며 관계를 쌓는다”며 “법원이 협소하고 형식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법원은 법조삼륜으로서 검찰 범죄에 눈 감아주는 경향이 있다”며 “공수처가 그런 점을 고려해 '사자가 토끼를 쫓을 때도 전력질주한다'는 심정으로 김 전 부장검사 사건에 총력을 쏟았어야 했는데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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