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간첩단' 사건, 항소심서 '감형'…2심 "비밀조직은 실체 없어"
검찰 "북 '지령' 받는 비밀조직 있다" 기소
법원 "북한 보고문은 조직 아닌 개별행위"
법원, 석씨에 징역 15년→9년6개월 '감형'
‘무죄’ 간부들 “이 사건은 윤석열 기획수사”
2025-05-16 10:13:04 2025-05-16 10:13:04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에서 이른바 ‘비밀조직’은 실체가 없다는 항소심 판단이 나왔습니다. 윤석열정부는 민주노총 안에 간첩조직이 있다면서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구속수사를 벌였지만, 법원은 조직의 실체를 인정할 증거가 없고, 다만 개인적 차원의 개별 행위만 있었다고 본 겁니다.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 출신 석모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9년6개월로 감형됐습니다. 
  
2023년 1월19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 출입문에 '공안탄압 중단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이른바 '간첩단 의혹'과 관련한 국가정보원의 민주노총 압수수색을 '한 편의 쇼'로 규정하며 같은해 7월 총파업 투쟁을 통해 윤석열 정부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수원고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박광서)는 15일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편의제공) 혐의로 기소된 석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9년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1심에서 징역 7년을 받았던 전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김모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1심에서 징역 3년형 처해진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위원장 양모씨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됐고, 신모 제주평화쉼터 대표는 1심에 이어 2심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검찰은 석씨 등이 알 수 없는 시기부터 2022년 12월까지 북한 노동당 대남 공작부서인 문화교류국 지령에 따라 문화교류국을 ‘본사’로 칭하는 지하조직 ‘지사’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간첩활동을 벌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국정원과 경찰은 2023년 1월 민주노총 본부와 여러 산별노조 사무실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습니다. 석씨 등 4명을 모두 구속수사하기도 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비밀조직 ‘지사’의 존재를 인정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지사’가 북한 문화교류국 지시를 받아 북한의 대남혁명전략 완수를 목표로 하는 노동당 조직”이라며 “민주노총 등 대규모 노동단체를 북한의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한 공작 등 활동을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2심 재판부는 “검찰 증거만으로는 ‘지사’가 조직으로서 실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은 북한의 지령문, 석씨의 보고문과 충성맹세문 등을 근거로 ‘지사’가 조직적으로 활동했다고 한다”며 “그러나 지령문은 북한이 석씨에게 일정한 지시를 한 점만 사실로 인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석씨는 민주노총 간부 직위를 이용해 지시를 이행했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지사가 다른 구성원을 포함해 조직적으로 노동계에 영향을 가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보고문과 충성맹세문에 대해선 “개인적 차원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개별적 행위로 유·무죄를 가렸습니다. 재판부는 가장 중형을 선고받은 석씨의 제기된 혐의를 대부분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가 주요하게 살핀 석씨 혐의는 민주노총 내부 정보를 넘긴 겁니다. 재판부는 민주노총 위상을 고려해 내부 징계가 아니라 중대 범죄 행위로 처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석씨의 양형이유에 대해 “석씨는 민주노총 핵심 직책을 수행한 점을 이용해 민주노총 내부 정보를 북한에 보고했다”며 “북한 공작원이 보낸 지령문 중 상당 부분이 민주노총 총파업이나 집회·시위 등에 관한 것임을 비춰보면, 공작원 역시 석씨의 지위를 적극 이용해 민주노총 사업과 활동 방향을 북한에 유리한 쪽으로 적용하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재판부는 “민주노총이 갖는 위상과 사회적 역할 등을 고려하면 민주노총 차원에서 개인적 일탈을 징계하는 것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라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하고 사회적 분열과 혼란을 초래한 중대 범죄 행위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석씨에 대해 유리한 정황으로는 “비밀조직 지사가 실제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또 “민주노총 총파업이나 사회 현안 대응은 민주노총 자율적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민주노총이 석씨가 결성한 비밀조직에 의해 장악돼 운영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한편 김씨는 북한 공작원들과 회합한 뒤 지령문을 받고 보고문을 보낸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받았습니다. 반면 양씨는 신씨는 북한 공작원과 만났으나 사전에 이를 알았거나 사후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선고 직후 무죄를 선고받은 양씨와 신씨는 “이 사건은 윤석열정부의 기획 수사”라고 주장했습니다. 양씨는 “윤석열정부가 민주노총을 간첩집단으로 만들기 위해 기획 수사를 벌였다”며 “아직도 국보법 피해를 받는 노동자들이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신씨를 대리하는 고부건 변호사는 “신씨는 북한과 통신을 주고받거나 자금을 수수한 증거가 없는데도 국정원의 표적 수사에 재판에 넘겨져 무죄를 선고받았다”며 “이것이 윤석열 정권이 떠들던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의 결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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