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내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씨가 두 번째 법원 포토 라인에 선 가운데 자의적 해석에 따라 악용 여지가 있는 계엄법 등 국가비상사태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감염병의 터널을 지난 경제위기와 내란 사태까지 맞은 만큼, 권력 남용을 막고 민주적 보장과 인권 보장을 더 강조하는 개선 방안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19일 국회입법조사처의 'NARS 현안분석'을 보면, 국가비상사태 제도 중 현행 헌법과 법률상 가장 강력한 계엄 제도의 경우 요건이 구체적이지 않아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윤석열씨가 19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4차 공판의 오전 재판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무장력' 소요·반란으로 제한해야
계엄 선포 요건 중 전시·사변에 대한 정의는 비교적 명확하나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정의가 명확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전시·무장폭동이 아닌 비무장 시위나 소요로 인해 사회질서가 어지러운 경우에도 계엄 선포가 가능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앞선 2016년 국방정책 연구를 통해 송윤선 국민대 정치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비상사태에 관한 판단이 각자마다 다를 수 있고 집권자의 정치적 의도에 맞춰 자의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어 계엄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시대 변화에 따른 제도 개선안을 요구해왔습니다.
즉,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국가비상사태'의 기준을 군경에 준하는 무장력이 수반된 소요·반란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예컨대 독일처럼 비상사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하는 등 계엄 제도의 명칭이 방위 사태로 변경될 필요성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헌법은 계엄 발령과 해제를 국무회의 심의 사항으로 정하면서도 국회가 해제 요구를 할 경우 해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헌법 규정을 조화롭게 해석한다면 대통령이 상황 종료라고 판단하는 경우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나 국회에서 해제 요구를 하는 경우 국무회의 심의는 필요하지 않다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계엄법에서 국회의 해제 요구가 있을 시 해제 요구한 때로부터 계엄이 해제된 것으로 하고 대통령이 해제하는 것은 형식적 절차임을 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또 대통령이 해제 요구에 즉시 응하지 않는 경우 바로 군을 동원한 국가권력 남용이 될 수 있다는 점,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확인하는 규정도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지난해 12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부로 계엄군이 진입하자 보좌진들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의회 존립·활동 보장 '상세 규정' 필요
아울러 비상사태 중 의회의 존립과 활동이 보장받을 수 있는 상세한 규정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만약 비상사태 중 의회를 해산하지 못하게 하고 임기가 만료돼도 비상사태가 종료될 때 또는 종료되고 90일 이후 임기가 종료되도록 의회 임기를 연장하는 해외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헌법, 의회제정법 또는 의회선거법에 대해 제정, 개정, 폐지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경우도 참고해야 할 부분으로 꼬집고 있습니다.
비상사태의 선포에 의회가 직접 관여하고 비상사태의 선포를 결정하거나 직접 선포하는 사례도 엿볼 수 있습니다. 독일은 히틀러가 출현하게 된 사태를 반성해 어떠한 사태에서도 의회민주주의와 권력분립 원칙을 관철, 연방의회가 비상사태의 선포와 폐지에 필수적으로 관여합니다.
캐나다의 경우 정부가 의회에 비상사태 선포안을 승인해주도록 의회에 안을 제출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하도록 운용하고 있습니다. 하원과 상원은 모두 7일 근무일 이내에 비상사태 선포 승인 여부를 결정합니다. 아울러 의회에 비상사태 선포 전 각 지역들과 협의한 사항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습니다.
의회의 의결 단계에서 하원과 양원이 각각 의결하는 구조로 하·상원 중 한 원에서 비상사태 선포를 승인하지 않으면 바로 당일 비상사태 선포는 폐기되는 식입니다.
국가비상사태 중 헌법 개정, 총선, 국민투표 회부와 같은 권한 행사의 금지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베니스 위원회는 비상사태 동안 의회 활동을 계속하며 비상사태 권한을 행사하는 동안 의회 해산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헌법 개정 금지도 권고하고 있습니다.
행정부가 비상 상황을 구실 삼아 야당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을 명시하고 있는 겁니다. 비상권한 남용에 따른 사법권 침해도 방지할 부분입니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종료돼도 비상사태가 끝날 때까지 임기를 연장하도록 하는 헌법 규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4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윤석열 비상계엄을 해제한 대한민국 국민께 드리는 감사문에 대한 수정안을 의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권한 남용' 사후 통제 장치 둬야
프랑스 사례와 같은 사후 통제 장치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국가비상사태 선포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회가 반드시 사후 조사해 국가긴급권의 남용을 방지하고 권한 남용이 드러날 땐 사법적 책임을 묻는 제도입니다. 이는 국가비상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임시적이면서도 강력한 권한을 함부로 남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장치라는 게 김선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의 설명입니다.
김선화 입법조사관은 "우리의 경우 헌법의 존재 의의와 국가권력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가장 극단적인 위험의 시기에도 최대한으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방식을 모색해야 하고 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러기 위해 비상 상황에도 절대로 보장되는 기본권을 명시하고 제한할 수 있는 기본권을 열거하되, 그 한계를 정할 필요가 있다"며 "계엄령과 같은 행정권의 비상적 입법 권한의 한계 명시, 국회가 국가비상 권한의 시작, 운용, 종료 및 그 사후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감시와 통제를 할 수 있는 사전·사후적 제도를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분수대에서 시민들과 어린이들이 야외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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