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정부부처는 늘 필요에 따라 생겨나고 없어지고, 재편을 거듭했습니다. 과거 행정자치부처럼 국민안전처 등을 통합해 행정안전부로 확대되기도 하고, 반대로 외교통상부처럼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로 쪼개지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국가보훈처는 국가보훈부로 승격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여성가족부는 윤석열 정부 내내 존폐 여부를 둘러싼 논란만 거듭하다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여가부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토마토Pick이 여가부 존폐 논란을 돌아보고 향후 전망도 살펴봤습니다.
지난 2022년 10월 서울 조올구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내부. (사진=뉴시스)
여가부 존폐 논란, 왜?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선 당시 주요 공약 중 하나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었습니다. 사실 여가부 폐지 문제는 2010년대 후반 젠더 논란이 커지면서 일부 주장으로 제기됐는데요.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남녀 간 격차가 줄어든 현대사회에서 여성을 위한 특정 정부부처가 있는 게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입니다. 이 주장은 특히 이대남(20대 남성)을 중심으로 많은 공감대를 얻었고, 선거철이 되자 정치권에서도 해당 의제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20대 대선 정국 들어서는 윤 전 대통령이 여가부 폐지를 공약했고, 취임하자마자 공약 이행을 위해 공격적으로 움직였는데요. 여가부 장관 후보자조차 폐지에 동의한다고 말하는 인물을 지명할 정도였습니다. 취임 때부터 ‘마지막 여가부 장관’을 지명한 셈이죠.
여가부, 3년 내내 표류
하지만 여가부의 존폐 여부는 국회에서 여야의 주요 논쟁거리가 됐습니다. 여야의 계속된 갈등으로 윤 전 대통령 임기 내내 국회에서 공회전했죠. 갈등이 폭발한 것은 2023년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사태였는데요. 이 잼버리는 폭염으로 인해 온열질환 포함 8000명 이상의 질환자를 발생시켰습니다. 관리 및 위생상태에도 큰 결함을 드러내 참가자들을 위험에 노출시켰죠. 부지 선정과 준비, 계약 등 여러 곳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고요. 사후 처리 과정에서 특히 논란이 된 게 여가부인데요. 여가부 외에 행정안전부와 지역 정치권 등 각계에서 조직위원장을 맡고 함께 운영했지만 잼버리 특성상 청소년이 주 대상이고, 관련 업무를 맡은 여가부에 많은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당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의 책임 회피성 국회 답변도 논란이 됐고요.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김현숙 장관은 잼버리 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됐고 결국 사태에 책임지겠다며 사표를 냈죠. 후임으로 지명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전임자보다 논란 거리가 더 많았습니다. '청문회 줄행랑'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이 험악하자 결국 자진 하차했습니다. 그 후 현재까지 1년 6개월 동안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전히 공석이며, 차관의 대행 체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새 장관이 임명되려면 3~4개월은 더 간다고 봐야겠습니다.
여가부 존폐 논란 일단락?
그렇다면 향후 여가부는 어떻게 될까요? 정당 간에 의견이 다른 만큼 대선 결과가 존망을 판가름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면 여가부는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은 논란이 될 때마다 여가부 폐지에 한사코 반대해왔습니다. 다만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대선 정국에서 여가부를 ‘평등가족부’로 재편하고 기능을 조정하자고 한 바 있는데요. 업무 범위와 명칭에서 변화는 생길 수 있겠습니다.
제3지대에서 대선에 도전하고 있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오래 전부터 여가부 폐지를 주장해온 정치인입니다. 사실 이 의원은 젠더 문제를 사회 이슈에서 정치권으로 끌고 온 대표적 인물인데요. 그는 지난 20대 대선에서 ‘세대포위론’을 주장, 이대남을 집중 공략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윤 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반면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을 선거에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 여당인 국민의힘의 입장은 모호한데요. 여러 후보가 난립하는 만큼 아직 정리된 입장은 없습니다. 과거 발언을 통해 살펴보면, 나경원 의원의 경우 지난 2022년 여가부에 대해 ‘아직 존재할 이유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반면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2021년 대선 경선 후보 시절 여가부 폐지를 골자로 한 공약을 낸 바 있죠. 국민의힘 주자들은 전체적으로 여가부에 대해 말을 아끼는 분위기입니다. 선거가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신중할 필요도 있겠고, 윤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보듯 최근 여성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의 강도가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일부 후보는 윤 전 대통령의 극우 보수층을 등에 업으려 하는 만큼 기존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려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치적 목적 활용 말아야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여가부에 대한 인식은 잼버리 사태와 장관 후보자 자질 논란 등으로 매우 악화됐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여가부의 업무 자체는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닌 평등과 가족의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최근 딥페이크로 인한 여성 피해자가 1만명을 넘었으며, 저출산은 온 나라가 힘을 쏟아야 할 중요 사안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정책과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게 여가부인데요. 향후 여가부의 업무를 조정하거나 재편하더라도, 사전에 철저한 논의와 준비가 필요해 보입니다. 짧은 대선 기간 동안 여가부 존폐가 또다시 정치적 목적과 갈라치기에 이용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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