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정부의 패권 경쟁 속에 경쟁의 기본 기치인 공정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기술이 타국을 군사·경제적으로 압도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자국 빅테크 앞세우기에 나섰다. 각국이 저마다의 이해득실에 따라 총성 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는데, 유독 트럼프는 노골적으로 자국에 유리하게끔 압박하고 있다.
한국에는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구하는 동시에 공공 분야 클라우드보안인증(CSAP)과 망이용대가를 무역 장벽으로 지목했다. 패권을 쥐기 위한 막무가내식 압박이 2025년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 대한 패권 선점 경쟁으로 자유, 공정 무역의 가치마저 위협받고 있다. 사실상 자유무역의 종말을 야기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는 실정이다.
미국 빅테크들이 반 경쟁적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내지 못하겠다는 망이용대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인터넷 동영상 중심으로 콘텐츠가 확대되면서 인터넷 트래픽 대부분은 소수의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발생시키고 있다. 트래픽 급증으로 망 용량 증설에 대한 각국 통신사 부담도 확대되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빅테크는 소비자가 통신사에 비용을 내고 있으니 그 비용을 토대로 통신사만 기반시설 투자에 책임을 지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 논리대로라면 네트워크 비용을 오롯이 소비자가 감당해야 하고, 아마도 통신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셈을 바로 해보면 그렇지 않다. 이익은 비단 소비자만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이득을 취하면서도 무임승차 중인 빅테크가 이제는 답을 할 차례다. 네트워크 생태계의 상생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이제는 빅테크도 비용 분담에 나서야 한다. 망이용대가라는 사업적 비용을 빅테크가 계속 모른 척한다면, 미래산업의 핵심 혈관인 초고속 네트워크 망을 둘러싸고 공유지의 비극이 나타날 수 있다.
또 한 가지, 구글은 우리나라에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구글의 주장대로 정말 한국이 이를 전면 거부하며 불합리한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일까. 2016년 구글이 두번째 공식적으로 반출 요구를 했을 때 당시 정부는 국가 보안시설과 군사시설 등을 가리고 서비스하는 조건으로 승인이 가능함을 시사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구글은 회사 정책을 이유로 곤란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구글이 고집하는 것은 국가 민감 시설 정보를 유추할 수 있는 고정밀 지도를 해외 데이터센터로 가져가는 것이다. 글로벌 운영 방침상 세계 각국 데이터센터에 데이터를 보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백번 양보해 구글이 우리 기업들과 동등하게 데이터를 자신들이 원하는 데이터센터로 가져가는 게 형평성에 맞다고 치자. 그렇다면 또 다른 이슈에도 형평성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들처럼 구글도 국내에서 자사 매출 규모에 걸맞는 수준의 법인세를 내는 게 응당 마땅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해 네이버는 3902억원, 카카오는 1590억원의 법인세를 내는 동안 구글이 낸 법인세는 173억원에 불과했다. 구글은 정당한 비용을 내지 않으면서, 분단국가의 안보에 대한 위험도 나 몰라라 하면서, 자사 정책만 내세워 해외로 데이터를 가져가겠다는 주장만 고집하고 있는 셈이다.
총성 없는 경쟁이 펼쳐지고 있지만, 경쟁의 기본 토대는 공정이다. 체급이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더라도 최소한 공정한 토대에서 서로 겨루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빅테크를 무조건 배척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외국 기업도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상 한국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비용을 내고, 동등한 규제를 감당하면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 내에서 진정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장기적 관점의 기업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공정과 경쟁은 따로이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필히 함께 모색해야 할 가치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빅테크도 어느 순간 혁신을 멈춘 채 고인물 신세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지은 테크지식산업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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