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연초 신동아건설을 시작으로 9곳에 달하는 중견 건설사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잇따른 건설사들의 부도 원인은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와 공사비 상승, 지방 미분양 적체를 감당하기에 이들의 기초 체력이 너무도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대외적인 악재도 겹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임 후 미국의 고관세와 감세 정책, 재정 지출 확대에 따른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커지면서 건설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발 고관세·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건설 산업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적다면서도, 제조업 등 연관 산업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건설업계도 부정적 연쇄효과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올해만 9개 건설사 법정관리 신청…폐업 업체는 1000곳 넘어
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96위를 기록한 대흥건설이 지난 8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공시했습니다. 대흥건설은 지난해 종합건설업체 공사실적(기성액)에서 32억7500만원을 기록하며 충청북도 도내 실적 1위를 차지한 업체입니다.
대흥건설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법정관리를 신청할 전망인데요. 특히 책임준공형(관리형) 토지신탁으로 진행한 평창·안산 등 전국 6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관련 자금난을 겪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흥건설 관계자는 "금리와 물가 인상 등으로 건설비용이 초과 발생해 준공이 늦어진 측면이 있다"며 "현재는 모든 사업장에서 준공을 완료했지만,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금융비용을 모두 떠안게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 불황 장기화에 유동성 위기를 겪는 건설사들이 줄줄이 주저앉으면서 줄도산 공포는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대흥건설을 포함해 올해 들어 법정관리를 신청한 건설사는 총 9곳에 달합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지난 1월 시평 58위의 신동아건설을 시작으로 같은 달 대저건설(103위)이 법정관리를 신청했습니다. 이어 2월에는 △삼부토건(71위) △안강건설(138위) △삼정기업·삼정이앤씨(114위·122위) △대우조선해양건설(2023년 기준 83위)등 무려 4개 업체가 도산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3월에는 벽산엔지니어링(180위)이, 이 달 들어서는 이화공영(134위)과 대흥건설까지 법정관리 신청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해당 업체들을 단순 부실기업으로만 치부할 정도는 아닙니다. 신동아건설은 신동아그룹 시절 여의도 63빌딩을 시공한 경험이 있고, 삼부토건은 업계 최초로 토건건설면허를 취득했을 정도로 업력이 있는 기업입니다. 대저건설은 앞서 충북 1위를 차지한 대흥건설처럼 경남 지역 2위에 오른 바도 있습니다.
건설업계는 이 같은 '도미노 줄도산'이 이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법정관리 신청에도 이르지 못하고 폐업에 이르는 업체도 크게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초부터 지금까지 종합건설업체 기준 171곳이 폐업을 신고했습니다. 하도급 업체까지 합치면 무려 1002건에 달합니다. 같은 기간 종합건설업체를 기준으로 폐업을 신고한 업체는 2022년 78곳, 2023년에는 127곳, 2024년에는 148곳을 기록했습니다.
대출 규제 강화에 트럼프발 악재까지…건설업계 '고난의 시대'
대내외적인 악재도 끊이지 않고 있어 건설사들의 줄도산 공포는 계속 이어질 전망입니다. 지방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미분양이 속출하는 등 주택시장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은 가운데 6월에는 제로에너지 의무화에 따른 분양가 상승, 7월에는 스트레스 DSR 3단계 시행으로 주택 실수요자 구매 여력 악화가 예상됩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산업 특성상 대출 규제가 심해지면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며 "대출 규제는 물론 건설관련 규제 완화를 정부 측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해결은 요원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출이 어려워지면 주택 시장 실수요자들의 구매 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사업상 대출을 실행한 업체들도 만기 연장 불가나 조기 상환 등의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다만 상황이 악화하면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 인하 시점을 당길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변수"라고 설명했습니다.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에 할인분양 관련 현수막이 붙어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선에 따른 고관세,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건설업계는 업계에 직접적인 영향은 적을 수 있지만, 연관 산업이 타격을 받게 되면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합니다.
또 다른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국내 건설산업은 수입 원자재 비중이 높지 않아서 대외적 경제 요건이 큰 영향을 끼치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건설업계가 투자 수요 위축, 주택 경기 악화, 대출 규제에 따른 주택 실수요자 구매여력 상실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많이 위축돼 있다. 호재가 겹쳐도 모자란 판에 악재만 생기니 업계 우려가 커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철한 위원은 "미국발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한다면 석유 등 글로벌 에너지 가격의 상승을 동반할텐데, 그럴 경우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건설 원자재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다"며 "이런 우려가 국내 제조업 산업을 위축시키면 주요 연관 산업인 건설업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업황에 불확실성이 또 추가된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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