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이진하 기자] 윤석열씨의 정치 여정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직 파면 선고로 마무리됐습니다. 이로써 윤씨는 박근혜씨에 이어 두 번째로 파면된 대통령이란 오명을 안게 됐습니다. '강골 검사'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대통령까지 올랐던 윤씨는 야당과 강경 대치로 일관하다 12·3 비상계엄이라는 자충수를 두며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27년 '검사 외길' 인생을 걸어온 윤씨는 검찰 출신으로 처음 대통령에 올랐습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9수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윤씨는 임관 후 특수통 검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굵직한 사건을 수사하며 '강골 검사'로 불렸습니다.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 2019년 7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 취임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27년 '검사 외길'…조국사태로 잡은 '별의 순간'
특히 윤씨는 검찰 여주지청장이었던 2013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나와 박근혜정부의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 윗선의 수사 외압을 폭로했습니다. 당시 그는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많은 국민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대구고등검찰청 검사로 좌천됐지만 2016년 박영수 특검팀의 파견 검사로 합류해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을 맡으며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윤씨는 이후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2017년 서울중앙지검장, 2019년 검찰총장으로 임명되며 검사로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와의 동행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한 수사 등으로 청와대, 여권과 갈등을 빚기 시작했고, 이후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정권과의 대립이 격화됐습니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공정과 상식'의 이미지를 쌓은 윤씨는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을 겨눈 수사들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문재인정부가 검찰개혁 일환으로 추진한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두고 정권과 크게 대립했습니다. 결국 윤씨는 검찰총장 임기 만료를 4개월 앞둔 2021년 3월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 두고 볼 수 없다"며 사퇴했습니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22년 2월 22일 충남 홍성군 내포신도시에서 열린 “서해안시대는 새로운 100년의 중심 내포에서!” 선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헌정사 첫 '0선' 대통령…야당과 극단 갈등
이후 2021년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씨는 정책적으로 반문(반문재인) 기조를 앞세우며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올랐습니다. 윤씨는 2022년 3월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0.73%포인트 차이로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0선' '검사 출신' 대통령이 나오게 된 건 1987년 직선제 개헌 후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곧 정치 경험이 전무한 '초보 대통령'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자신의 임기 내내 지속된 여소야대 국면에서 윤씨는 빈약한 정치력으로 국정운영의 돌파구를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윤씨는 2년 7개월의 임기 동안 25번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마이웨이식의 국정운영을 보였습니다. 25번의 거부권 행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45번)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횟수입니다. 또 임명을 강행한 인사청문 대상자는 총 29명으로, 앞선 정부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이어 야당 주도로 부인 김건희씨를 겨냥한 특별검사법을 거듭 발의한 것과 함께 지난해 예산안에 대거 책정된 '예비비'를 절반가량 삭감하면서 윤씨와 야당과의 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처럼 윤씨가 수세에 몰리던 상황에서 지난해 12월3일 오후 10시24분쯤 방송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정치인으로서 최악의 선택을 감행했습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 의원들의 발 빠른 대처와 소극적인 계엄군들로 인해 4일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윤씨는 곧바로 이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약 3시간이 넘게 흐른 새벽 4시20분쯤 윤씨는 계엄 해제를 하겠다며, 2차 담화를 발표해 계엄 사태는 일단락됐습니다.
윤석열씨가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진행된 지난 1월 15일 경찰에 의해 체포된 후 과천청사 공수처 청사로 윤 씨가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
'비상계엄'으로 추락…구속·석방·파면까지
이후 야 6당은 윤씨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탄핵 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상이었습니다. 그러나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씨 탄핵안 투표가 정족수 미달로 불성립 폐기됩니다. 그러자 윤씨는 3·4차 담화를 통해 "계엄은 합법적인 것이며, 정국 안정을 위해서 한 일"이란 말과 함께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며 수사든 탄핵이든 맞서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14일 윤씨의 탄핵소추안이 가결 204표를 받으며 국회 문턱을 넘겼습니다. 탄핵소추안 통과 후 이틀 뒤인 16일 헌법재판소는 사건 접수 후 첫 재판관 회의와 심판 일정을 논의하면서 속도를 냈습니다. 그러다 다수 언론에서 비상계엄이 오랜 시간 계획됐다는 점을 보도하면서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 신분인 윤씨에게 서울서부지법이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그러나 윤씨의 체포는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1월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씨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하고, 반복된 과정 끝에 7일 체포됐습니다. 탄핵에 이어 체포까지 된 윤씨는 계엄을 선포한 배경이 '부정선거'란 점을 언급하며 음모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요. 당시 다수의 군과 경찰의 지휘관들이 '비상계엄'이 있던 날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침탈 배경은 윤씨의 지시였다고 증언했으나, 윤씨는 이들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윤씨는 지난 2월 25일에 마지막 탄핵심판 변론기일 최후진술에서도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며 "국정 마비와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 붕괴를 막고 국가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헌재는 윤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2·3 비상계엄은 위헌성이 인정된다고 보고 헌재는 만장일치로 파면을 최종 결정했습니다.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내란 우두머리(수괴)는 그렇게 몰락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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