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코로나19 여파와 배달 대행 플랫폼의 발달로 음식 배달이 일상화됐습니다. 플랫폼에 종속돼 일하는 배달 기사도 자연스레 증가했습니다. 문제는 배달 중 교통사고도 많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배달 중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가 주목받게 됐습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배달 중 사고로 사망한 A씨의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례비 지급 불승인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2022년 9월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열린 '플랫폼노동자대회'에서 배달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지=뉴시스)
A씨는 지난 2023년 9월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다 신호위반을 해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로 숨졌습니다. A씨의 유족들은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며 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례비의 지급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공단은 A씨의 신호위반으로 인해 사고가 났다는 이유로 급여의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않습니다.
공단은 재판에서 A씨의 신호위반이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2항에 따른 중과실에 해당하고 이 사건 사고는 오로지 A씨의 신호위반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이므로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급여의 지급을 거절한 처분은 적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족들은 A씨의 신호위반 과실이 고의성, 중대성 및 위법성 측면에서 산업재해보상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법원은 다른 근로자의 교통사고 사망 사건에서,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의 ‘근로자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이라 함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사망 등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근로자가 업무 수행을 위해 운전하던 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경우, 해당 사고가 근로자의 업무 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사고가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등으로 일어났다는 사정만으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고, 사고의 발생 경위와 양상, 운전자의 운전 능력 등과 같은 사고 발생 당시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법원은 위 대법원의 법리를 바탕으로 이 사건 사고가 A씨의 신호위반이 원인이 돼 발생한 사고인 점은 인정되지만, 업무 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다고 보이고 근로자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사망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배달 기사의 업무 특성상 신속하게 음식을 배달해야 하므로 급하게 이동해야 하는 점 △A씨는 사고 당일 32회의 배달 업무를 수행해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상당히 누적된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해 신호위반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점 △A씨의 진행 방향 1차로에 2대 이상의 다른 차량이 정차해 있어 시야 장애물로 작용한 것이 사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은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당했을 때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해 재해 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시행됐습니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부를 제외하고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이 적용 대상이 됩니다. 사업주의 무자력 등으로 인해 보상을 못 받는 업무상 재해를 입은 근로자 보호를 위해 국가가 일정한 보험료를 징수해 사업주의 고의나 과실, 근로자 본인의 과실에 상관없이 산업재해보상 보험급여를 지급하게 됩니다.
2023년 7월1일부터 개정된 산재보험법이 시행되면서 노무 제공자 등의 개념을 정의하는 조문이 신설됐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노무 제공자로서 플랫폼 종사자도 포함됐습니다. 주로 배달 대행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배달 기사도 산재보상법의 적용 대상이 된 겁니다.
업무상 재해란 사업주의 지배 관리하에 근로계약을 기초로 형성되는 근로자가 본래 해야 할 담당 업무와 그 업무에 부수되는 행위로 인해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업무상 재해가 인정되려면 △업무상 사고 또는 업무상 질병으로 재해가 발생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있을 것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 또는 범죄행위로 인한 재해가 아닐 것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자성에 대한 판단은 구체적인 업무와 그에 따른 업무 수행 방식 등 여러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만큼 취약한 환경에서 일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회보장적 기능을 가진 법률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 사고와 같이 구체적으로 업무 수행 중 플랫폼 종사자 등이 처한 상황에 따라 사고가 일어난 경위를 파악함으로써 적절한 보호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