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검찰은 지난 23일 임신 36주차의 태아를 살해한 혐의로 병원장과 의사 등 2명을 구속기소, 재판에 넘겼습니다. 산모인 20대 여성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제왕절개수술을 해 태아를 출산하고, 미리 준비한 사각포로 태아를 덮은 후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왼쪽에서 두번째)이 2024년 10월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임신중지 비범죄화 후속 보건의료 체계 구축과 권리보장 입법 촉구 법조계·의료계·시민사회 공동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는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2020년 12월31일을 개정 시한으로 정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입법 공백 상태입니다. 현재 낙태에 대한 제한은 모자보건법 제14조에 정하고 있는데, 대통령령에서는 임신 24주 이내의 사람만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낙태죄의 처벌은 불가능하지만 위 사건에서 의사와 산모는 태아가 출산해 사람이 된 후 살해했으므로 살인죄 혐의를 받게 된 겁니다.
자기낙태죄는 임신한 부녀가 주체가 되고 의사낙태죄는 의사가 주체가 됩니다. 객체는 살아 있는 태아인데 그 시작 시기는 보통 자궁에 착상된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 대법원은 태아가 사람이 되는 시작 시기를 '규칙적인 진통을 동반하면서 분만이 개시된 때'로 봅니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형법상 해석이므로 재산 관계 등의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민사법의 해석보다 일찍 사람이 된 것으로 보는 겁니다.
헌재는 이러한 낙태죄에 관해 위헌 여부를 판단해 왔는데, 지난 2012년 결정에서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사익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하지 않다고 하는 헌법재판관의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헌재는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습니다.
헌재는 낙태죄 조항이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고 봤습니다. 낙태죄 조항을 통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은 정당하고 적합한 수단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입법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 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했으므로,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반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결정했습니다.
헌재는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결정 가능 기간)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 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다르게 정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모자보건법상 낙태를 정당화하는 사유에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으므로, 낙태죄 조항으로 인해 결정 가능 기간 내에 낙태 갈등 상황에 처한 여성은 오히려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낙태를 실행하게 되기도 한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헌재는 입법자가 △결정 가능 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결정 가능 기간의 종기를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결정 가능 기간 중 일정한 시기까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결정 가능 기간과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상담 요건이나 숙려 기간 등과 같은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 등에 관해 입법 재량을 가지는 점을 고려해 개선 입법 시한을 정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입법 공백 상태로 남아 낙태가 성행하고 앞서 본 사건과 같이 태아를 출산한 후 살해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외국 형법에서 낙태죄가 입법으로 이어지는 방식을 보면, △임신 후 일정 기간 안에 행해진 낙태를 허용하는 방식 △원칙적으로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일정한 사유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식 △임산부가 상담을 받은 뒤 자기 결정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방식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헌재 결정의 취지와 같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조화될 수 있는 입법이 절실하지만, 입법 공백의 장기화로 인해 태아의 생명권은 방치된 상태입니다. 헌재의 결정 취지나 외국의 입법례를 보아도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일정한 초기 주수까지는 비교적 자유롭게 낙태를 허용하되 중간 주수에는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만 허용하는 방향의 개선 입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형법상 낙태죄의 개정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낙태가 허용되는 범위나 방식이 변경되면 그에 따라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는 방법이나 낙태를 결정하기 전 전문적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제도 등 관련 제도의 정비도 필요합니다. 극히 예외적인 사유만을 규정하고 있는 모자보건법도 조속히 개정돼야 할 법률 중 하나입니다. 긴 입법 공백에 따른 혼란으로 인해 태아의 생명권은 보호되지 못하고 임산부나 의사 역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해 정부와 입법부가 뜻을 모아 신속히 개선 입법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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