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접근 및 냄새 맡기>쓰다듬기>입 깨물기>혀 빼내기>회복으로 이어지는 쥐의 응급처치 과정(사진=사이언스/USC)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맹자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본 사람이 느끼는 측은지심을 예로 들어 인간이 본성이 선하다고 설명합니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사회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우리나라에서는 <공감의 시대>로 번역된 <공감의 문명(The Empathic Civilization)>에서 인류 문명의 발전을 공감 능력의 확장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고통을 비롯한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 능력을 인류 사회의 핵심 동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서 보듯이 최근에는 이런 공감 능력이 타인뿐만 아니라 동식물로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인간은 종종 본능적으로 ‘응급 처치’를 합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이 동종 개체에 대해 이와 같은 친사회적 행동을 보이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물들의 공감 능력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논문이 발표되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 신경과학 연구진은 21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의식을 잃었거나 죽은 동족을 소생시키려는 것과 같은 쥐의 친사회적 행동”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USC) 신경과학자 리 장(Li Zhang) 교수는 연구를 위해 쥐를 마취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몇 년 전 그가 마취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쥐를 쥐들이 들어 있는 우리에 넣자, 안에 있던 다른 쥐들은 이상행동을 보였습니다. 정상적인 쥐들은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은 쥐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거나 물어뜯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마치 다른 쥐들이 마취된 쥐를 응급 처치와 비슷한 방식으로 소생시키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후 장 교수와 동료들은 마취된 쥐가 우리 안의 다른 쥐들의 행동으로 마취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단축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장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실험 대상 쥐들에게 무의식 상태의 쥐와 깨어 있는 쥐를 동시에 보여주는 실험을 통해 이 행동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실험 대상 쥐들은 무의식 상태의 쥐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강도가 증가하는 일관된 행동 패턴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쥐들은 무의식 상태인 동료 쥐에 다가가 냄새를 맡고 쓰다듬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동료가 반응하지 않자, 동료의 입을 물기 시작했고, 심지어 혀를 끌어당기는 행동까지 드러냈습니다. 실험 대상 쥐들은 죽은 쥐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응급 처치와 유사한 행동을 일정 시간 보였으나, 깨어 있거나 심지어 잠이 든 정상적인 쥐에 대해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쥐들은 낯선 개체보다 오랫동안 같이 지낸 친숙한 개체를 위해 훨씬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을 나타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USC의 신경과학자 휘종 위트 타오(Huizhong Whit Tao) 교수는 쥐들의 이런 행동은 본능적이라면서 “이 쥐들은 이전에 무의식 상태의 동료 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학습을 통해 이런 행동을 익혔다고 볼 수 없으며 동물들에게서 응급 처치와 유사한 행동이 보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 대학에서 쥐의 공감 능력에 관해 신경 생물학과 신경 화학적으로 오랫동안 연구해온 제임스 버킷(James Burkett) 교수는 낯선 쥐보다는 같이 지낸 동료 쥐에게 더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는 “친숙 편향(familiarity bias)은 쥐가 단순한 반사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쥐들은 눈앞의 자극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맥락과 대상의 정체성을 고려한 뒤에 반응을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의식이 없는 동료 쥐에 대한 찌르기와 당기기 같은 행동은 무의식 상태의 동료가 마취에서 회복하는 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혀를 끌어당기는 행동은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이 행동이 무의식 상태 쥐의 기도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심지어는 연구팀이 의도적으로 무의식 상태의 쥐의 입에 작은 이물질을 넣었을 때, 다른 쥐가 혀를 당기는 행동을 통해 이물질을 제거하기도 했습니다.
버킷 교수는 “단순한 관찰만으로 쥐들이 도움을 주려는 이타적 의도를 단정할 수 없지만 도움이 필요한 개체에 반응하고 실제로 그들에게 이로운 행동을 수행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위트 타오 교수는 “쥐들이 호기심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자극에 대한 신기함이 사라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행동이 줄어들어야 하지만 실험을 5일 동안 반복 수행한 결과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관찰된 쥐들이 행동은 무력해진 동료를 돕는 코끼리나 돌고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야생에서 다양한 동물들이 질병, 부상 또는 죽음으로 인해 쓰러진 동료에 대해 접촉, 그루밍, 찌르기, 더 나아가 가격하는 것이 관찰되어왔습니다. 이런 동물들의 행동은 인간의 응급 처치를 연상시키지만, 이러한 행동의 정확한 본질, 한 종 내에서의 일반성, 그리고 신경 메커니즘은 여전히 확실하지 않습니다.
USC의 연구진은 다만, 사회적 유대, 신뢰, 공감 등과 관련이 있는 신경전달물질인 옥시토신 회로가 관련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전기생리학적 기록과 미세 내시경 칼슘 이미징을 통해 내측 편도체(medial amygdala) 내의 뉴런과 시상하부의 실방핵(paraventricular nucleus)에서 옥시토신을 합성하는 뉴런이 쥐들의 소생에 도움을 주는 행동을 촉발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의식상태의 쥐의 혀를 빼내는 동료 쥐(사진=사이언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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