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표정에도 감정이 나타난다. (사진=게티이미지)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은 1872년에 펴낸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The Expression of the Emotions in Man and Animals)'에서 감정, 표현, 진화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강조하며, 얼굴로 나타나는 감정 상태는 진화 과정을 통해 포유동물들이 갖게 된 ‘공유된 언어(shared language)’라고 했습니다.
다윈의 이론은 해부학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들의 표정에 작용하는 근육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노팅엄 트렌트 대학에서 사회적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 브리짓 월러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얼굴 근육은 개와는 38%, 고양이와는 34%, 원숭이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와는 47% 유사합니다.
그러나 얼굴 근육이 유사하다고 해서 동물들의 감정을 곧바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보통은 동물들이 처한 외부적 환경과 상황으로 감정 상태를 유추하는 정도입니다.
스코틀랜드 농업대학(SRUC)과 웨스트 오브 잉글랜드 대학(UWE) 연구진은 AI를 이용해 돼지들의 표정으로 돼지의 고통, 질병, 또는 정서적 고통의 징후를 살피는 인텔리피그(Intellpig)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실험 농장에서 키우는 돼지들은 매일 아침 먹이를 먹으러 나올 때 사진을 찍고 인공지능(AI) 시스템은 돼지의 주둥이, 귀, 눈 등 표정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여 여기에 맞춰 사료를 공급하고 건강 상태를 농장주에게 알려줍니다. 돼지들의 표정 데이터는 사료, 물 섭취량, 치료 이력, 체중 증가 같은 다른 측정 요소들과 통합되어 농장의 생산성을 최적화할 수 있습니다.
SRUC의 동물 복지 및 행동 과학자인 엠마 백스터 교수는 어린 암퇘지들의 스트레스를 연구하기 위해 나이 든 돼지들을 들여와 어린 돼지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어린 돼지들은 울거나 배변을 하는 등 불안한 행동을 보였고 그런 돼지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동물들의 표정을 관찰하여 이것을 스트레스가 적은 환경에 있는 동물들의 표정과 비교해 ‘얼굴 찡그림 척도(grimace scale)’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이 척도에 대조해 동물이 겪고 있는 고통이나 스트레스의 정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인텔리피그를 설계한 UWE의 머신 비전(machine vision) 엔지니어 멜빈 스미스는 “동물들의 행복, 평온, 좌절, 두려움과 같은 더 복잡한 감정의 해석에서 AI 시스템이 인간을 능가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희미한 조짐들이 있다”면서 “동물의 건강, 복지, 보호를 더 우선시하는 새로운 동물 관리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의 안나 자만스키 교수 연구팀은 AI를 이용해 동물들의 얼굴에서 고통의 미묘한 징후를 찾아내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동물 사진에 눈의 위쪽과 아래쪽, 혹은 콧구멍의 양쪽처럼 얼굴 근육 움직임이 잘 나타나는 중요한 부위를 수작업으로 표시하고 이 점들을 이어 하나의 패턴을 만듭니다. 예를 들면 고양이의 경우 통증을 느낄 때, 입의 양 끝의 사이의 거리가 넓어지면 코와 입의 양 끝을 연결하는 선이 평상시와 달라지는 것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패턴을 표시한 수많은 사진을 AI에 입력하여 학습시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진을 보여주면 AI는 스스로 패턴을 분석하여 특정 표정을 식별하고 연구자들이 이미 만든 ‘찡그림 척도’와 대조하여 통증이나 불편함의 징후를 찾아냅니다.
자만스키 교수 연구팀은 자신들이 개발한 AI 시스템이 동물의 통증을 찾아내는 데 77%의 정확도를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 연구원인 가브리엘 렌시오니는 AI에게 3,000장의 얼굴 사진에 나타난 패턴을 학습시켜 88%의 정확도로 통증을 느끼는 동물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AI가 동물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불안해하면서도 고통뿐만 아니라 슬픔, 분노, 좌절, 행복감 등 인간에 더 가까운 감정을 인식하는 쪽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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