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미자 탐색을 돕기 위해 큐빅킬로미터 중성미자 망원경(KM3NeT)의 탐지 유닛을지중해에 설치하기 위해 내리고 있다.(사진=KM3NeT)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겨우 존재하지만, 우주에 미만해 있고 우주 탄생의 비밀도 품고 있습니다. 다만 ‘유령 입자(ghost particle)’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탐지하기 어렵습니다. 다름 아닌 중성미자(neutrino)입니다.
중성미자에 ‘겨우 존재하는 것’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과학자는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를 지낸 김제완 박사입니다. 그는 자신의 물리학 에세이 모음집에서 중성미자를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라고 명명하고 책 제목도 그렇게 붙였습니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요?
중성미자는 전하를 띠지 않습니다. 따라서 전자기장이나 자기장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질량도 0에 가까울 정도로 작습니다. 따라서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이 거의 없습니다. 중성미자는 우리 몸은 물론이고 행성과 별까지도 어떤 작용 없이 관통합니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은 ‘겨우 존재하는’ 이 중성미자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중성미자가 빅뱅 이후의 초기 우주, 초신성과 블랙홀의 형성 과정 등 우주를 연구하는 데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고 이것의 실체를 규명하면 물리학의 새 장을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개국 68개 기관에서 360명 이상의 과학자, 엔지니어, 기술자들로 이뤄진 대규모 연구진은 큐빅 킬로미터 중성미자 망원경(KM3NeT)을 이용해 초고에너지 중성미자를 발견했다고 최근 과학 저널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중성미자의 실체를 포착한 것은 아닙니다. 대신 중성미자가 암석이나 바닷물을 관통하면서 생성된 다른 아원자 입자, 즉 뮤온(μ)의 흔적을 포착한 것입니다. 이 뮤온은 KM3NeT를 빠른 속도로 통과하며 바다의 어두운 심연 속에서 파랗게 빛나는 광자들을 남겼습니다. 연구팀은 이 빛의 패턴과 감지 네트워크의 여러 지점에 도달하는 시간을 근거로 중성미자의 궤적과 에너지를 유추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번에 뮤온으로 흔적을 남긴 중성미자가 220 × 10¹? 전자볼트의 에너지를 지녔다고 추정했습니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가 아니면 표시할 수 없는 에너지로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인 CERN의 대형 하드론 충돌 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가 만들어 내는 에너지의 수만 배에 달합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그것이 질량이 거의 없는 ‘겨우 존재하는’ 입자여서 탁구공이 떨어지는 에너지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KM3NeT가 초고에너지 중성미자의 통과 흔적을 찾아낸 것은 2023년 2월이었지만,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2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런 초고에너지 중성미자에 반신반의하는 과학자들의 많았습니다. 이전까지 가장 에너지가 높았던 중성미자는 2014년 남극 얼음 밑에 설치된 더 큰 규모의 감지기가 기록한 중성미자로 에너지가 10 × 10¹? 전자볼트였습니다. KM3NeT 대변인이자 프랑스 입자물리학 센터(CNRS) 연구원인 파스칼 코일(Paschal Coyle)은 KM3NeT가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수백 PeV(10¹?V)의 중성미자가 처음으로 탐지된 이번 사건은 새로운 우주 관측의 창을 열었다”고 말했습니다.
고에너지 우주는 거대 블랙홀이 은하의 중심에서 물질을 흡수하거나 초신성 폭발, 감마선 폭발 등과 같은 거대 변화가 일어나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이 강력한 우주 가속기들은 우주선이라 불리는 입자의 흐름을 생성합니다. 일부 우주선은 그 근원 주변의 물질이나 광자와 상호작용으로 중성미자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장 고에너지 우주선이 우주를 가로질러 여행하는 동안 일부는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CMB)의 광자와 상호작용해 매우 에너지가 높은 “우주 생성 중성미자(cosmogenic neutrinos)”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초고에너지 중성미자의 통과를 기록한 탐지장치, KM3NeT는 시칠리아 연안에서 80km 떨어진 수심 3450m 심해서 설치된 것으로 탐지 유닛(Detection Unit)은 100m 간격으로 해저에 고정돼 있고 DU 하나에는 광전자증폭기(photomuilplier) 31개가 달려 있습니다. 이 망원경은 이름은 가로, 세로, 높이가 km 단위라는 의미입니다. 엄청난 규모의 탐지 장치입니다.
중성미자 탐지 장치를 깊은 바다에 설치하는 이유는 태양과 대기의 방사선을 막는 강한 차폐 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바다는 중성미자 신호를 방해하는 우주선 입자의 영향이 적습니다. 또한 지상보다 인공적인 방해 신호(노이즈)가 적어 정밀한 측정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중성미자가 물 분자와 반응할 때 생성되는 체렌코프광(Cherenkov light)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용어해설>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CMB): 는 우주의 초기 상태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빛으로, 빅뱅 후 약 38만 년이 지난 시점(약 13.8억 년 전)에서 방출된 전자기 복사
체렌코프광(Cherenkov radiation): 매질(물, 공기, 유리 등) 속에서 빛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하전 입자가 방출하는 특유의 푸른빛
심해에 설치된 큐빅킬로미터 중성미자 망원경(KM3NeT)의 개념도. 이 장치는 중성미자는 포착하지 못하지만 중성미자가 근처 바위나 바닷물에 부딪혔을 때 생성된 아원자 입자인 뮤온을 포착했다.(사진=KM3NeT)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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