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민법 제746조는 불법의 원인으로 인해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규정합니다. 어떤 급부의 원인이 되는 행위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경우라면 이미 지급된 금전 등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는 겁니다.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가 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
도박자금을 빌려주는 등의 방법으로 제공해 발생한 채권은 대표적인 불법원인급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A씨가 원고로부터 도박자금을 빌린 후 차용증을 작성한 반환약정이 도박자금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원인급여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 원고가 제기한 사해행위취소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돌려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A씨는 원고로부터 2021년 2월 도박자금을 빌리고 2021년 5월 차용증을 썼습니다. 이후 B씨는 2022년 10월 A씨가 빌린 5000만원의 채무를 보증한다는 보증서를 작성해 줬습니다. 2022년 11월 B씨가 자신의 소유인 부동산을 피고들 명의로 증여하자 원고가 위 증여 행위가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취소와 원상회복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원심은 원고가 A씨에게 도박자금 명목으로 돈을 대여한 것이므로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기 때문에 A씨에 대해 반환청구를 할 수 없고, 그 채무를 보증한 B씨에게도 보증채무의 이행을 구할 수 없으므로 채권자취소권의 피보전채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은 과거부터 불법원인급여 후 급부를 이행받은 자가 급부의 원인행위와 별도 약정으로 급부 자체나 그에 갈음한 대가물의 반환을 특약하는 것은 불법원인급여를 한 자가 그 부당이득의 반환을 청구하는 경우와는 달리 그 반환약정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가 되지 않는 한 유효하다고 봤습니다. 반환약정의 무효 여부는 반환약정 그 자체의 목적과 당초의 불법원인급여가 이루어진 경위, 쌍방 당사자의 불법성의 정도, 반환약정의 체결 과정 등 민법 제103조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합니다.
이런 법리를 바탕으로 이 사건에 대해 A씨가 당초 도박자금 명목으로 원고로부터 돈을 받았더라도 그 후 원고에게 차용증을 작성해 줌으로써 5000만원을 반환하기로 하는 별도 약정을 하고, B씨도 그 반환약정에 따른 채무를 보증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A씨의 반환약정을 그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가 아닌 이상 유효하고 B씨의 보증도 유효한 겁니다. 그럼에도 원심이 A씨의 차용증 작성이 별도의 반환약정인지, 그 반환약정이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인지에 관해 심리하지 않은 것에 불법원인급여 후 그 급부를 반환하기로 하는 약정의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해 원심판결을 깨고 돌려보낸 겁니다.
불법원인급여 제도는 스스로 법질서에 위배되는 급부를 제공한 자에 대해 법적 보호를 거절함으로써 법적 정의를 유지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 불법의 내용은 민법 제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불법한 원인행위로 인해 상대방에게 종국적 이익을 부여하면 그 반환청구를 부정하는 겁니다. 하지만 수익자의 불법성이 급여자의 불법성보다 현저히 크고 급여자의 불법성은 미약한 경우나 사후적으로 반환하기로 하는 약정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지 않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반환청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위 판결은 보증 채무자인 B씨가 피고들에게 본인의 부동산을 증여한 행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이었는데요. 채무자의 사해행위(채권자를 해하는 행위)를 취소하는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한 겁니다. 채권자취소권은 채권자와 수익자(또는 전득자)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채무자의 사해행위를 취소하고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회복해 채권자의 권리 실현이 가능하도록 하는 권리입니다.
채권자취소권의 행사는 제3자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법원의 판단을 받기 위해 재판상 청구만이 허용되고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인정됩니다. △채무자와 수익자(또는 전득자) 사이의 사해행위를 취소하고 원상회복을 구하는 채권자의 채권이 존재할 것 △사해행위가 있을 것 △수익자(또는 전득자)가 악의(사해행위 당시 법률행위가 채권자를 해한다는 사실을 인식)일 것 등의 요건을 충족하면 원칙적으로 수익자(또는 전득자)는 채무자로부터 받은 목적물을 원상회복해야 하는 겁니다.
도박자금과 같은 불법원인급여의 반환을 청구하거나, 채무자가 재산을 은닉하는 행위를 발견해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하는 경우와 같이 복잡한 법률관계에서는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그 인정 여부가 달라지게 됩니다. 다양한 법리가 적용되는 복잡한 법률관계에서는 불측의 손해를 입을 우려가 크므로 사안에 맞는 법리에 따라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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