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010130)이 전격적으로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습니다. 사측은 이번 유증을 통해 국민기업으로 도약하겠다, 신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으나 속내는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한 주식으로 경영권을 방어하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30일 오전 고려아연은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2조7000억원 규모의 유증을 결정했습니다. 신주 373만주를 주당 67만원에 발행하는 내용입니다.
고려아연은 이번 유증이 “국가 전략산업 육성 등에 매진해 국민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으나, 공시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그보다는 현 경영진의 경영권을 방어하겠단 의도가 내포돼 있습니다.
일단 유증 발행가격부터 문제입니다. 주당 67만원입니다. 고려아연은 최근 주당 89만원에 181만주를 공개매수로 사들였습니다. 이 자사주는 날짜를 정해 소각할 예정입니다.
고려아연은 자사주를 취득하기 위해 약 2조7000억원을 조달한 바 있습니다. 그중 상당액이 차입금입니다.
이번 유증 목적에도 신사업 (시설)투자, 타법인 지분 취득 등이 포함돼 있으나, 유증 예정금액의 상당액인 2조3000억원이 채무상환용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빚을 갚기 위한 유증입니다. 결과적으로 89만원에 주식을 사서 소각하고, 그 주식을 67만원에 다시 발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식을 매입하고 재발행하는 과정에서 그 차액만큼이 허공에 사라지는 셈입니다.
유증 청약 절차에도 경영권 방어 의도가 드러나 있습니다. 이번에 발행하는 신주 중 20%에 해당하는 74만주는 우리사주조합에 배정됐습니다. 남은 80%, 298만주 중에서 5%를 하이일드펀드 등에 선배정한 후, 나머지가 청약자들에게 돌아가게 되는데요.
문제는 청약 한도를 걸었다는 점입니다. 주주가 청약할 수 있는 최대한도가 발행 예정 신주의 3%, 11만1979주입니다. 이를 초과해서 신청할 수 없습니다. 고려아연 현 경영진과 분쟁 중인 영풍, MBK파트너스도 3%밖에 못 받습니다. 청약자 본인은 물론 특별관계자의 청약도 합산하므로 다른 펀드를 동원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이번에 발행하는 신주 중 우리사주조합에 배정된 20%, 74만주를 우군으로 더해서 지분싸움에서 이기겠다는 의도입니다.
이에 경영권 분쟁 중에 대규모 유증을 진행하는 데 따르는 논란을 피할 수 없을 전망입니다. 자사주 고가 매입 후 저가 발행을 결정한 이사진들에 대한 배임 의혹도 포함됩니다.
이날 고려아연 이사회의 결정에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됩니다. 일단 법원에 유증을 중지해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 이날 오전에도 상승세를 이어가던 고려아연 주가는 유증 소식과 함께 하한가로 추락했습니다. 다만 유통주식이 많지 않아 하한가에 쌓여 있는 매도 물량은 2만주를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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