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태영건설 상장채권이 상장폐지를 앞두고 잠시 거래가 재개됐습니다. 채권 상환 연기, 출자전환 등 채권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인데도 시세는 6000원대를 지키고 있습니다. 채권전문가는 구조조정 후 큰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가격대가 절대 아니라고 조언합니다. 내달 4일부터는 장내거래도 불가능해 주의가 필요합니다.
29일 한국거래소 공시시스템 KIND에 따르면, 태영건설68 채권은 감사의견 거절을 사유로 상장폐지가 예고됐습니다. 이에 3월26일부터 4월3일까지 7영업일간 정리매매를 진행합니다. 정리매매 직후인 4일에는 즉시 상장폐지될 예정입니다.
태영건설은 현재 기업구조조정(워크아웃)을 위한 실사를 진행 중입니다. 이 기간 중에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주식과 채권 거래가 중지됐습니다. 이중 상장채권인 태영건설68은 지난 26일부터 거래가 재개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는 채권을 상장폐지하기 전에 투자자들에게 정리매매의 기회를 준 것으로 내달 3일을 끝으로 장내거래는 중단됩니다.
대규모 PF 부실 공개에도 6천원 지켜
태영건설68 채권은 거래소에 의해 매매가 중지되기 직전인 지난 13일 6989.40원을 기록했습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위기감이 확대·확산했던 1월엔 최저 5383.80원(19일)까지 떨어지기도 했는데, 그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구조조정을 통한 정상화 기대감이 반영되며 꾸준히 반등한 결과 7000원 코앞까지 반등했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사진=뉴시스)
하지만 주식, 채권 매매가 중지된 후 일주일이 지난 20일엔 태영건설의 부실이 상당하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태영건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을 결산한 결과 자산에서 부채를 뺀 자본총계가 -5617억원을 기록, 전액 자본잠식에 빠진 겁니다. 부동산 PF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채무 1조5000억원을 반영하면서 대규모 적자가 발생한 탓입니다. 시장에선 태영건설의 우발채무가 최대 9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의견거절을 냈으니 주식, 채권 거래 중지는 수순에 따른 겁니다.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기업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로, 태영건설이 주식 상장폐지를 위한 절차를 밟는다면 상장폐지를 유보한 채 시간을 벌게 될 겁니다. 그럼에도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부동산 PF 부실 규모가 크다는 사실에 충격이 컸고, 이는 구조조정 과정이 녹록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채권가격을 보면 그 충격이 예상외로 크지 않아 보입니다. 태영건설68 채권의 정리매매 첫날인 26일 채권가격인 794원 급락한 6194.7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27일에도 6055.1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28일엔 장중 6300원까지 오르더니 종가 6250원을 기록했습니다. 매매정지 전보다는 하락했지만, 대규모 부실이 알려진 후에도 1월 시세보다는 훨씬 높은 6000원대를 지킨 것입니다.
이는 워크아웃 후 기업이 정상화될 경우 채권으로 큰 차익을 낼 수 있을 거라는 투자자들의 기대가 녹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감자→출자전환→감자’ 채권도 못피해
태영건설68 채권은 발행액의 80% 이상을 기관(펀드)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에 따라 협약 채권으로 묶여 채권을 시장에 내다팔 수 없습니다. 즉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태영건설68은 거의 전부 개인 물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매매 기간 중 발행금액에 비해 거래량이 많지 않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태영건설68 채권은 워크아웃 방안에 따라 처리되겠지만 여러 선례를 참고하면, 일부는 주식으로 출자전환하고 나머지는 장기간에 걸쳐 상환받는 방식이 될 전망입니다. 상환 대 출자전환의 비율이 몇 대 몇이 될지는 예단할 수 없습니다. 다만 태영건설이 회생한다는 전제하에, 채권은 오래 기다리면 상환받긴 하겠지만, 신주로 출자전환될 주식은 다시 감자를 거쳐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입니다.
채권자들의 출자전환에 앞서 기존 주식에 대한 무상감자가 선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운용 대표는 “주주 감자 후에 출자전환이 이뤄지겠지만, 출자전환 후 또 무상감자를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재무구조를 더 깨끗하게 정리해야 새로운 누군가가 유상증자 등으로 자금을 투입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만큼 부실 규모가 크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뤄져야 또는 일련의 재무구조 개선 방안이 약속돼야 태영건설을 회생시키고 주식도 상장폐지를 막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채권 처리 방안을 모르는 상태에서 태영건설68의 적정가격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출자전환과 추가 감자까지 고려한다면 지금의 채권가격은 투자 측면에서 전혀 메리트가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김 대표는 “가끔 구조조정으로 채권에서 큰 이익을 내는 경우가 있으나 지금 태영건설 채권가격으론 기대하기 어렵다”며 “채권으로 매매차익을 노리거나 높은 이자수익률을 기대한다면 다른 채권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습니다.
또한 상장채권의 경우 정리매매가 끝나면 현금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합니다. 장외주식의 경우 비상장 주식을 중개하는 앱이나 업체가 있지만 장외채권은 거래 상대방을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자칫하다간 투자금이 장기간 묶일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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