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에서 사람들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파괴된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봄철이 되면서 자포리자주를 비롯한 곳곳의 점토질 토양이 심각한 진흙탕으로 변하는 '베즈도리자' 현상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을 둘러싼 한미 간 '비밀 합의'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통령실이 ‘살상 무기 지원 금지’ 원칙을 강조한 지 하루 만에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살상용 무기인 포탄 수십만 발을 이송시키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한미 간 비밀합의…시점은 윤 대통령 국빈방문
25일 외교가에 따르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포탄 수십만 발을 이송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한국이 비밀 합의에 따라 미국에 포탄을 이전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차례로 우크라이나에 보내도록 준비했다”며 “이로써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집속탄 공급 여부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미룰 수 있게 됐다”고 했습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미국에 집속탄 지원을 요구해 왔지만, 백악관과 국무부는 국제 사회의 비난을 의식해 반대해 왔습니다. 집속탄은 하나의 폭탄에 여러 개의 소형 폭탄이 들어가 있어 대량 살상 무기로 분류됩니다. WSJ는 미국과 한국 정부가 이에 관련한 언급을 거부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WSJ는 미 국방부가 어떤 방식으로 포탄을 이송 중인지, 이송이 언제 완료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으나, 한국 정부와 포탄 구매를 두고 협의해 왔다는 점은 인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WSJ 보도에 대해 “평소처럼 비공개 외교 대화 내용은 비공개를 유지하겠다”며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우크라이나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동맹국들의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WSJ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달 미국 국빈 방문이 포탄 지원과 관련된 계기로 이뤄졌다고 전했습니다. 워싱턴 선언이 발표된 이틀 뒤, 윤 대통령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대담에서 “지금 우크라이나의 전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그 전황에 따라서 저희가 국제사회와 함께 필요한 또 국제규범과 국제법이 지켜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WSJ는 한국 정부가 무기 지원을 고려하고 있음을 윤 대통령이 암시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미 국방부 문건에도 적시된 무기지원…대통령실 "입장 변화 없다"
WSJ의 보도는 그간 한국 정부의 ‘살상 무기 지원 금지’ 원칙을 스스로 깬 것이라, 논란이 됐습니다. 특히 대통령실은 전날에도 이 원칙을 강조했는데요.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4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김병주 민주당 의원이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지원할 것인가’라고 묻자 “현재까지 인도적·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기존 원칙을 고수했죠. 하지만 하루 만에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지원하는 비밀 합의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대통령실은 이날 WSJ의 보도가 논란이 되자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된 입장은 대통령실에서 명백하게 밝힌 바 있고, 그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군과 관련된 것이라 국방부에서 기자들에게 이미 잘 설명했다고 본다”고 답변을 미뤘습니다. 앞서 국방부는 같은 날 정례브리핑에서 WSJ 보도에 대해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면서도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재정적·인도적 지원을 해오고 있다”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 및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의 공식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대통령실 제공)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은 지난 4월에도 논란이 됐습니다. 지난 4월 미 국방부 문건 유출 사건 당시 한 문서에서 “한국이 155㎜ 포탄을 폴란드로 우회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죠.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원 목적으로 한국 측에 155㎜ 포탄 물량을 할당해 지원을 요청했고 한국은 폴란드로 우회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했던 내용이 담겼던 겁니다. 윤 대통령 역시 지난달 19일 공개된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나 국제사회에서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 등이 발생하면 인도적·재정적 지원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한편, 유럽연합(EU)도 벨기에 자금 정산소인 유로클리어에 묶어둔 러시아 자산의 수익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EU는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제재하기 위해 러시아 중앙은행 등이 유럽에 보관한 자금(1966억유로·한화 약 281조원)을 동결했습니다. 유로클리어는 동결된 러시아 자금을 재투자해서 지난 1분기에 7억3400만유로(약 1조450억원)의 수익을 올렸는데 이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는 겁니다. 미국과 가까운 EU와 한국이 일제히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면 러시아와의 갈등은 한층 심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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