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대한항공(003490)이
아시아나항공(020560) 합병의 키를 쥔 미국과 유럽연합(EU) 심사 과정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글로벌 항공 시장에서 미국·EU의 영향력이 막대한 만큼 한 곳이 불승인하면 사실상 합병은 무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곳이 먼저 승인을 내주면 나머지 한 곳과 일본의 승인은 무난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EU 경쟁당국 집행위원회는 양사 합병 관련 중간 심사 과정이 담긴 ‘중간심사보고서(SO·Statement of Objection)’를 17일(현지시간) 대한항공에 발부했습니다. SO를 발부했다는 것은 EU 경쟁당국이 노선 독과점 여부 관련해 추가 심사가 필요한 항목을 대한항공에 공식 통보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한항공 측은 “EU 경쟁당국의 SO 발행은 2단계 기업결합 심사 규정에 의거해 진행되는 통상적인 절차”라고 설명했지만 내부적으로 이를 대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실제 합병을 위해 대한항공은 국가별 전담 전문가 100여명을 꾸렸고, 2020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내·외 로펌 및 자문사 비용으로만 1000억원을 투입해 해외 경쟁당국으로부터의 서류 검토 등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여객 노선 독과점 우려”
SO 발표가 EU 집행위원회의 합병 최종심사 발표 80여일을 앞둔 상황에서 나와 EU에서 양사가 가진 슬롯(시간당 이·착륙 허가 횟수)을 더 내놓으라는 압박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SO를 보면 EU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바르셀로나 운송에 있어 향후 양사 합병 시 서비스 질 저하, 가격 인상 등이 우려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EU가 지난 2월 심사를 1단계에서 심층 조사인 2단계로 넘어가는 이유와 같습니다.
당시 EU 집행위원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할 시 유럽경제지역(EEA)과 한국 사이 여객 및 화물 운송 서비스 시장의 경쟁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심층조사 착수 배경을 밝혔는데,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알짜배기인 유럽 노선이 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인 만큼 해당 4개 노선에 대해 EU가 우려할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EU의 SO 발부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일부 시각도 존재하지만 미국이나 EU에서 불승인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국내항공사 관계자는 “그동안 승인을 내주었던 해외 국가들의 승인 절차를 보면 자국 항공사에 유리한 슬롯을 얻어내기 위해 시장경쟁 제한 우려를 해소하라고 대한항공에 여러 차례 요청해왔다”며 “불승인을 내줄 거였다면 진작에 불승인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한항공이 EU로부터 승인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등 4개 노선 독과점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대한항공은 우선적으로 국적사인 에어프레미아와
티웨이항공(091810) 등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에어프레미아와
티웨이항공(091810)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따른 슬롯, 운수권 양도에 대한 기대감으로 대형기 도입을 계획해왔습니다.
실제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12월 인천~시드니 노선 첫 취항에 나서면서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에서는 최초로 장거리 취항에 뛰어들어 장거리 운항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신생 항공사 에어프레미아는 처음부터 서유럽까지 운항이 가능한 대형기 B787-9 기재 도입을 확정했습니다. 시장에선 에어프레미아가 합병에 따른 슬롯 이전 등에 따른 특혜를 가장 많이 입을 항공사로 보고 있습니다. 운수권은 항공기로 여객과 화물을 탑재하고 하역할 수 있는 권리로 양국 정부간의 협정에 의해 성립하고, 이후 각 국 정부가 분배합니다. 바르셀로나를 제외한 파리, 로마, 프랑크푸르트는 운수권이 있어야 취항이 가능합니다.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 양사 항공기가 주기되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감감무소식 미국…EU 승인나면 곧바로 승인할지도
EU는 1단계 심사에서 심층조사 2단계로 접어든만큼 어느 정도 진척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은 감감 무소식이어서 대한항공에서도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미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에 대한 최종 심사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심사 기간을 연장했습니다. 양사 기업결합에 따른 노선 독과점 우려와 이를 대한항공이 어떻게 해소할 지를 지켜보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작년 3월 양사 합병 심사 절차를 간편에서 심화로 상향해 경쟁 제한성 우려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미국이 우려하는 노선 독과점 해소를 위해 국내항공사로는 에어프레미아가 신규 진입해 경쟁 제한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소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실제 에어프레미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취항 중인 인천발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 취항하고 있습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은 지난해 12월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양사가 보유한 슬롯을 일부 제공한다고 해도 현재보다 항공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오히려 향후 다양한 항공사가 취항함에 따라 소비자 선택의 폭이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SO 발부 관련 대한항공 측은 “EU 경쟁당국 또한 정해진 절차에 의해 SO를 발부하되, 대한항공과의 시정조치 협의 또한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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