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11일(이하 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동.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가 미국·일본과는 밀착하고, 중국과는 척을 두는 올인외교를 펼치는 것과는 크게 다른 모습입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지난 10~11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8시간 동안 전격 회담했습니다. 지난 2월 중국 정찰풍선 사태로 토니 블링컨 미극 국무장관의 방중이 연기된 이후 3개월 만에 미중 고위급 회담입니다. 이는 그간 단절됐던 소통 채널을 복원해 갈등 악화를 막고 긴장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시도로 보입니다.
백악은 고위 당국자는 양국 갈등 사항이었던 정찰풍선 문제 등에 대해 “이 불행한 사고로 관계에 정지가 발생했으며 이를 넘어서는 소통 채널 재구축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양측은 중미 관계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관계의 하강을 중단시키고 안정화하기 위해 솔직하고 심층적이며 실질적이고 건설적인 논의를 했다”며 “양측은 이 전략적 소통 채널을 계속 잘 활용하는데 동의했다”고 전했습니다. 양측은 이번 회담에서 토니 블링컨 장관의 중국 방문, 미중 정상회담 등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지만, 미국 내에서는 오는 8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블링컨 장관과 친강 외교부장 회동이 가능하다는 기대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는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이 별도의 회담을 갖는 방안도 마련될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회동 전부터 미국은 이미 중국과 대화 재개를 겨냥한 메시지를 낸 바 있습니다. 설리번 보좌관은 지난 4월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브루킹스연구소 특강에서 “우리는 (중국과) 디커플링(탈동조화·Decoupling)이 아닌 디리스킹(위험회피·De-risking)을 추구하며 이 점에 대해 유럽의 핵심 지도자들과 의견이 같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디리스킹은 근본적으로 탄력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공급망을 확보한다는 의미로, 이를 구축하는 데 다른 국가로부터 압박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미국 이익에 핵심적인 분야에 대한 중국 수출 규제를 이어가겠지만 중국을 봉쇄하거나,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겁니다.
사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 특강 이전인 2020년 카네기국제평화재단에서 펴낸 ‘미국의중산층에 더욱 도움 될 대외정책’ 보고서에 공저자로 참여해, 유사한 주장을 했습니다. “중국은 안보의 위협, 경제적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글로벌 파트너”라며 중국을 마냥 적대화하지 않고, 미국 이익 중심으로 대하겠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을 마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싱어송라이터 돈 맥클린의 친필 사인이 담긴 통기타를 선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공동취재단)
미중 대화 재개하는데…한국은 계속 중국에 적대적?
미중 대화 재개는 현재 미중 갈등을 과거 미소 냉전 수준으로 인식하고 미일 올인외교를 하는 한편, 중국·러시아와는 마찰을 불사하는 윤석열정부의 기조와는 크게 다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19일 공개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며 “단순히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고 남북한의 문제처럼 역내를 넘어서는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말해 중국과 관계 악화를 가져왔습니다. 그간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면서 대만 문제를 중국 내부의 문제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미국도 이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대만 문제가 한국과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정면 부인했습니다. 중국은 이 인터뷰가 공개된 다음 날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고, 한국도 이에 지지 않고 응수하면서 양국 간의 날선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정부의 이 같은 기조의 핵심에는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이 있습니다. 김 차장은 지난 대선 이전인 2021년 ‘미-중 신냉전 시대 한국의 국가전략’ 논문에서 “지난 5년 사이에 본격화된 미국의 대중 봉쇄정책은 마치 과거에 소련에 했던 것처럼 중국이 미국 앞에 완전히 굴복하고 쓰러질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당히 잘 지내면서 모호한 외교를 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김 차장은 “(그간 한국 정부는)미중 강대국 틈바구니 사이에서 어떤 쪽도 선택하지 않으면서 둘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헤징 전략(위험분산·Hedging Strategy)을 구사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주변 이웃 국가를 압도하는 국력을 지니지 못하는 한, 갈등 제로의 헤징 외교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차장은 “미중 신냉전은 가치와 이익의 경쟁이 결합된 구조”라며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과 미국이 요구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한미일 3국 밀착이 중요한 전략이라고 했습니다.
미중 갈등은 신냉전 구도?…“옛 패러다임 불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과거 이념의 산물인 냉전구도로 현재 국제 정세를 일괄 적용한 데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의 입장에 매몰돼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는 “현재 미중 갈등을 신냉전 구도로 보는 것은 옛 패러다임에 불과한데 무리하게 사용하고 있다”며 “과거 소련은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서 세계 각국과 경제로 얽히고 설켜 미국도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 한다”고 한국의 올인외교를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윤석열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의도를 잘못 읽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압박외교를 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경험 삼아 노선을 수정했는데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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