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정책금융기관들이 매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공시하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기관별 이행 수준의 격차가 크고 활동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단순한 계량 지표에 의존한 평가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사회적 책임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는 21일 주요 정책금융기관 13곳을 대상으로 사회적 책임 활동을 △기부·봉사활동 등 사회공헌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 △장애인 고용 현황 △지역경제 및 중소기업 지원 등 동반 성장 활동으로 나누어 분석했습니다.
기부와 봉사활동은 정책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 실천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입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관들의 전체 매출액 대비 평균 기부율은 0.09%입니다. 이는 한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2023년 주요 기업 219개사의 사회공헌 지출 비율(0.12%)보다 낮았으며, 기관별 격차도 컸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0.36%로 가장 높은 기부율을 기록했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0.32%로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한국벤처투자는 63만원, 신용보증기금은 375만원에 그쳐 기부액이 미미했습니다.
기업은행(024110)은 매출 대비 기부율 0.22%로 3위였으나 금액은 751억원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봉사활동 실적에서도 차이가 났습니다. 지난해 봉사활동 실적은 기업은행이 1024회로 가장 활발했고, 신보(171회), 캠코(169회), 한국무역보험공사(128회), 한국주택금융공사(102회)가 100회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반면 한벤투는 9회, 한국해양진흥공사와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는 각각 7회로 활동이 저조했습니다.
남성 육아휴직 10% 미만…국책은행 장애인 고용률 의무 미달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원하는 제도는 직원 복지와 노동환경 개선에 꼭 필요한 요소일 뿐 아니라 공공기관 사회적 책임 평가에서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정책금융기관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평균 10%에 그쳤습니다.
해진공은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65%로 높았고, 배우자 출산휴가 법정일수 사용률도 80%로 우수했습니다. 한벤투는 남녀 사용률이 동일했으며, 배우자 출산휴가 법정일수 사용률도 100%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기관은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30% 미만이었고, 한국산업은행(9.7%), 무보(8.3%), 기업은행(3.7%) 등은 1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KIND는 남성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이 없었으나, 배우자 출산휴가는 법정일수를 모두 채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관들의 육아휴직 종료 후 재직률은 해진공(78%)을 제외하고 대부분 90% 이상이었으며, 무보와 한벤투, KIND는 100%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대상자 수는 공개되지 않아 실제 사용률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남성 육아휴직자가 없으면, 일부 여성이 휴직을 사용하지 않아도 여성 사용률은 100%로 계산돼 왜곡이 생기는데요. 배우자 출산휴가 법정일수 사용률 역시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아예 통계에서 빠지게 되는 등 지표 해석에 한계가 있습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육아휴직 사용률은 대상자와 실제 사용자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소규모 기관은 대상자 수 공개 시 특정 개인이 드러날 수 있어 전면 공개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KIND(6.3%)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5.4%) 등이 법정 공공기관 의무고용률(3.8%)을 초과했으나, 산업은행(2%), 한국수출입은행(2.6%), 해진공(2.8%), 기업은행(3.6%) 등은 의무고용률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국책은행 3곳 모두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역 경제 지원·상생 협력 활발…단순 계량 지표 평가 실효성 의문
정책금융기관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중소기업 지원에 있어 일부 성과를 보였습니다. 2024년 공공기관 동반성장평가에서 신보, 무보, 중진공, 기술보증기금, 주금공, 캠코는 최우수 등급을, HUG는 우수 등급을 받았습니다.
캠코는 '나라ON 시니어일터' 사업으로 국유재산을 활용한 시니어 일자리 창출과 지역 연계로 우수 사례로 선정됐으며, 산업은행은 1011억원 규모의 지역 특화 펀드를 조성했습니다. 주금공은 200억원 규모의 상생대출펀드를 통해 부산 소재 중소기업에 대출과 금리 혜택을 제공했으며, 기업은행은 '새희망홀씨' 대출로 서민·취약계층을 지원하며 지난해 공급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습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지난 4월1 대전 서구 캠코캐피털타워에서 '캠코 국유 시니어 서포터즈' 임명식을 개최했다. (사진=캠코)
또한 기업은행과 신보는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으로 피해를 본 기업에 3000억원 규모의 특례보증부대출을 제공했습니다. 기보와 현대엔지니어링의 '해외동반진출 특례보증', 무보와 파이칩스의 '해외채권 회수사업'도 대·중소기업 간 협력 사례로 주목됐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평가 방식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정책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 활동은 단순한 기부나 봉사활동을 넘어, 기관 본연의 역할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반영해야 하는데요. 기관별 이행 수준과 성과 차이가 커서 전반적인 ESG 경영 효과를 달성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봉사활동 횟수, 기부금 액수, 장애인 고용률 등 단순 계량 지표 중심의 평가로는 실제 사회적 책임 활동의 질적 성과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홍형득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책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관의 노력 자체가 평가 대상이 돼야 하며, 정해진 체크리스트에 집착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기관 특성에 맞는 평가 기준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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