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멀쩡하게 잘 팔리는 상품을 서울에서는 2만원에 판매하는데 부산에선 1만원에 살 수 있다? 그 사실이 SNS를 타고 공유된다면 아마 반나절도 안 돼 부산지역에서 판매되는 해당 상품은 동이 날 겁니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듯이 아주 오랫동안 이런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증시는 아니고 중국 얘깁니다.
중국 증시는 어느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느냐로 주식을 구분합니다. 우리의 경우 코스피와 코스닥, 코넥스 시장으로 나뉘어 있긴 한데 어차피 가상세계에서의 구분일 뿐 물리적으로 장소가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토가 넓은 중국은 다릅니다. 중국본토에 상하이거래소, 선전거래소가 있고 가장 최근인 2021년에는 내국인 전용 베이징거래소도 개장했습니다. 사실은 금융시장을 먼저 개방한 홍콩거래소의 역사가 가장 길죠. 무려 선전거래소보다 100년 앞선 1891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중국의 4개 거래소는 모두 지역으로 구분한 개념입니다. 미국의 나스닥, 한국의 코스닥에 해당하는 IT기업들이 모인 곳은 상하이거래소 안에 ‘커촹반’이라는 이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또한 선전거래소도 중소판, 창업판으로 중소벤처기업을 분류했습니다. 하지만 상하이·선전거래소의 주력 기업들은 메인보드에 올라 있죠. 각각의 메인보드는 외국인 투자 가능 여부에 따라 A주와 B주로 나뉘어 있습니다.
홍콩거래소도 H주, 레드칩(R주), 항셍주로 구분합니다. 이 중에서 주목할 곳은 H주입니다. 중국본토에 설립, 상장한 기업 중 홍콩거래소에도 함께 상장한 경우 H주로 분류됩니다. 중국본토와 홍콩에서 같은 기업의 주식이 거래되는 것이죠. 동일한 기업의 동일한 주권을 서로 다른 곳에서 거래하는데, 둘 사이에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져 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상하이에서 11.2위안, 홍콩은 2.4위안
상하이거래소 상장기업 징청기전(600860)은 가스실린더 형태의 저온저장시설, 운송 컨테이너 등을 제조 판매합니다. 매출의 상당액이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이들이 만드는 제품이 수소차에도 쓰입니다. 그 외에 기계·전기장비도 만듭니다.
징청기전의 실적을 살펴보면, 매출은 괜찮은 편인데 이익률이 낮은 것이 흠입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2021년 11월부터 한달간 주가가 급등한 바람에 고평가 주식이 됐습니다. 작년 영업이익이 1200만위안에 불과한데 상하이거래소에서 시가총액 60억위안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것도 짧은 급등 후 오랜 시간 하락한 결과입니다. 16일 주가(11.26위안)는 고점(28.8위안)의 반토막도 안 됩니다.
징청기전은 홍콩H주(00187)로도 거래 중입니다. 현재가는 2.72홍콩달러. 이를 위안화로 환산하면 2.418위안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것도 싼 가격은 아니지만 상하이거래소 주식에 비하면 거의 5분의 1에 불과한 가격입니다. 똑같은 징청기전 주식인데 중국본토에서 홍콩H주의 365% 가격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폴리에스터 원료와 섬유를 생산하다가 석유가스 탐사개발 기업으로 변신한 시노펙오일필드(600871)도 이에 버금갑니다. 지난해 매출액 737억위안, 영업이익 7억위안 올린 기업답게 시총도 400억위안에 달합니다. 다만 실적에 비하면 주가가 비싸군요. 2.13위안, 시총 404억위안입니다. 그런데 홍콩H주(01033) 주가는 0.610홍콩달러, 환산하면 0.542위안입니다 상하이거래소 시장가의 4분의 1 가격이죠.
선전증시 쪽은 괴리율이 더 높습니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시바오의 경우 A주(002703)와 H주(01057)의 괴리율이 494%에 이릅니다.
이렇게 중국본토 거래소에서 매매되는 시장가격이 홍콩에서보다 높게, 혹은 홍콩에서 더 싸게 거래되는 종목이 일부가 아니라 거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 차이가 얼마나 벌어져 있느냐만 다를 뿐입니다. 상하이거래소와 선전거래소를 통틀어 오직 한 종목, 중국초상은행만 예외입니다. 초상은행은 중국 주가(34.82위안)보다 홍콩H주(환산가 35.56위안)가 조금 더 높게 형성돼 있습니다.
955% 괴리율 40%로 좁혀져
서로 다른 곳에서 거래되는 동일한 기업의 몸값(주가)이 이렇게 벌어진 경우, 가격이 높은 쪽이 하락하든 낮은 쪽이 오르든 그 차이가 줄어드는 것이 정상일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 전부터 홍콩H주의 상대적 저평가가 지속되고 있으니까요.
오죽하면 증권사들도 본토의 A주와 홍콩H주의 주가 차이를 실시간으로 집계한 정보를 ‘A-H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이와 같은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단지 공격적인 투자성향을 지닌 중국인들이 본토의 주식을 매매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괴리라고 해석하는 의견이 많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본질가치는 투자자가 누구인가로 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상황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또 그 차이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는 모습도 포착됩니다.
희귀금속을 채굴 가공해 전기차 재료로 주목받기도 했던 낙양몰리브덴 주식은 2015년 11월 초만 해도 중국본토(603993)에서 13.8위안, 홍콩거래소(03993)에서는 1.6홍콩달러였습니다. 당시 환율 기준으로 괴리율이 955%에 달했습니다. 지금도 낙양몰리브덴의 주가는 중국본토가 더 높지만 괴리율은 40%로 확 줄었습니다. 판유리 제조업체 낙양유리(600876)의 괴리율도 당시 715%에서 현재 180%로 크게 줄었습니다. 광주자동차(601238)는 251%에서 144%로 좁혀졌습니다. 다른 종목들도 낙양몰리브덴만큼은 아니어도 주가 차이가 줄었습니다.
서울과 부산에서의 가격 차이가 단시간 내 좁혀지는 것과 달리 중국 증시의 괴리율은 오랜 시간을 두고 좁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증시가 개방되고 선진화될수록 이와 같은 흐름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중국본토와 홍콩에 동시상장된 종목이라면 H주 쪽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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