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선율 기자]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 강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투자를 할 때 해당 자산이 가치 안정성을 유지하는지 제대로 따지고 접근해야한다는 교훈을 남긴 동시에 법안 부재로 혼란이 심한 가상자산 시장에 대해 질서를 바로 잡아야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싣는 계기가 됐다.
루나 실패 후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대표가 테라·루나 생태계를 재건하기 위해 새롭게 선보인 루나 2.0 가격도 출시 열흘 만에 급락세를 보이는 중이다. 가상자산 시장의 혼란이 여전한 가운데 <뉴스토마토>는 전문가 3인에게 테라·루나 폭락 사태에 대한 원인 진단과 함께 어떤 대안 마련이 필요한지 물었다. 인터뷰에 응한 3인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의 리서치센터를 이끄는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과 국내 최초 가상자산 공시 정보를 제공하는 가상자산 리서치 플랫폼 쟁글을 총괄하는 크로스앵글 김준우 공동대표, 디지털 자산부터 금융산업까지 국내외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금융시장 분석 전문가인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다.
이들 전문가는 공통적으로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스테이블 코인 1개의 가치가 1달러에 고정되는 페깅이 무너지면서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페깅 유지에 필수인 테라USD(UST)와 루나 간 전환 과정이 급증하는 규모에 맞춰 시기적절하게 확장되지 못하면서 빚어진 참사라는 것이다. 테라·루나와 같은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이전에도 꾸준히 제기돼온 바 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사태 발생 이전까지는 가격을 금방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 상황에서 쉽게 비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돼 투자자들의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특히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루나 ICO 당시 국문 백서를 통한 투자 위험의 고지가 없었다"면서 "거래소 상장 심사에 있어서도 페깅 알고리즘의 외부공격 취약성 등에 대한 실질심사가 있었는지 불분명하다. 제도화된 국문 공시가 없다보니 관련 투자 정보에 대한 시장 전문가의 분석 및 평가보고서가 부족했다"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 속 투자자들이 지나친 낙관론 속에서 투자를 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들과 나눈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아래에 소개한다.
왼쪽부터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 김준우 크로스앵글 공동대표,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사진=각 사·기관 제공)
담보 안정성이 스테이블 코인을 투자할 때 중요하다고 강조된다. 테더, USDC, 다이(DAI) 등 다른 코인들은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코인들인지?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 안정성 순위는 USDC, 테더, DAI 순서일 것 같다. USDC와 테더 모두 현금성 자산을 담보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이다. 차이점은 USDC의 자산 내역 공개가 좀 더 충실하고 순수 현금 비중이 조금 더 높으며 미국 규제 당국의 관리 감독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테더는 본사가 홍콩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일반적으로 담보형 스테이블 코인이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보다는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테라-루나의 폭락 당시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USDT)도 1달러 페깅이 깨졌지만, 일정 기간 후 다시 가격이 안정됐다는 사실도 담보형 스테이블 코인의 상대적 안정성을 잘 나타내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U와 미국에서 스테이블 코인의 자격을 담보형 스테이블 코인에만 인정하고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에는 인정하지 않는 점도 담보형과 알고리즘형 스테이블 코인 안정성의 질적 차이를 나타내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담보형 스테이블 코인 역시 상당한 투자위험이 있다. 투자자들은 담보형 스테이블 코인의 경우에도 담보자산 가치의 하락, 보관위험, 신뢰성 하락에 따른 런(run) 사태 등에 관한 위험 요소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최근 가격 폭락으로 전 세계 코인시장에 충격을 준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테라USD(UST)의 발행사인 테라폼랩스가 새 버전의 루나 코인 출시를 강행하려는 가운데 국내 거래소들은 새 코인을 상장해줄 계획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된 모습. (사진=연합뉴스)
금융위에선 기존 증권시장 규제방안을 일부 가상화폐 시장에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어떤 방향으로 규제가 돼야할까.
김 연구위원 가상자산 시장의 플레이어들이 금융시장과 유사한 탈중앙화 금융형태를 보이며 금융시장과 유사한 투자자 피해사례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응도 금융규제와 유사해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 미국, EU 등의 가상자산에 대한 증권시장 유사규제의 접근방법은 어느 정도 국제적 정합성에 일치한다. 국내도 EU의 암호화폐 관련 MiCA 규제안이나 미국의 '책임있는 금융 혁신법' 등 국제적 규제트렌드와 디지털자산시장의 특성을 잘 반영하는 입법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준우 크로스앵글 대표 현재 증권시장은 꽤 효율화·체계화·안정화가 돼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증권시장에는 있는데 가상자산 시장에 없는 기능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게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것을 그대로 도입하는 게 아니라, 시장 특수성을 고려해 어떠한 형태로 언제 도입할지에 대한 논의가 더 중요하다.
정 센터장 기존 증권시장에서는 고위험 고수익 투자에는 일반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투자자들을 전문투자자와 일반투자자로 구분하고 벤처캐피탈, 헤지펀드, 파생상품 펀드 등은 전문투자자들만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 전문투자자와 일반투자자의 구분은 자산 규모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투자 기회가 부자들에게만 주어지는 불공정한 시스템이라고도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러한 제도를 따른다. 가상자산도 고위험 고수익 투자다. 제도권의 기존 방식을 적용하면 전문 투자자들만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일반인들이 이미 코인 투자를 많이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제도 변화를 대중들이 수용할지는 의문이다.
거래소마다 제각각 코인 상장, 상폐 기준에 대한 공통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센터장 거래소가 동일한 상장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발상은 한국에는 증권 거래소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동일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 같다. 실제로 미국, 일본, 캐나다는 다양한 거래소가 각기 상장 기준을 달리하고 있다. 정부 개입 없이 동일한 상장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거래소들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상장 자산의 퀄리티를 올리기 위해 이러한 방식이 최선일지, 다른 방법이 있을지는 좀 더 연구해야 할 것 같다.
김 대표 거래소가 공공기관은 아니라는 관점에서 비용을 들여 사업을 하는 만큼 사업의 경쟁력에 영향을 주는 상장을 동일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다만 최소한의 공통 검토 기준에 대한 협의는 있을 수 있다. 자율적으로 하는 것을 의심하기보단 자율적으로 해가는 것을 잘해나갈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관점에서의 평가, 재무·법무 관점의 실사 등 3자 감사 역할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기능들의 보완이 필요하다.
법안 부재로 가상자산 시장의 혼란이 커졌다는 지적이 많다. 업권법 등 논의가 되고 있는데 시일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문제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정 센터장 자산 거래 관련 규제는 과거에 기반하고 있는 반면 가상자산은 신생 자산군이라서 레거시 규제에 맞아 떨어지지 않아 여러 국가의 규제당국이 어려워하고 있다. 국가에 따라 규제당국의 이해도가 높아 빠르게 법규 체계를 개선하는 나라도 있고 그렇지 못한 나라도 있다. 미국 규제당국은 비교적 이해도가 높아 보인다. 미국보다는 한국이 뒤처지는 것 같지만 우리보다 못한 나라들도 많다. 업권법이 생기기 전까지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거래소 사용자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김 대표 투자자 보호 조치 부재 논의가 지난 수년간 천천히 이뤄지는 가운데, 투자자 피해는 계속 되고 있다. 자율규제 및 입법 이전의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등과 같은 조치들이 이뤄져야 하며, 이 때 시장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과 이해도가 있는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투자자 입장에서의 보호 조치를 위해 우선순위가 높은 것들 및 실행가능한 가장 가벼운 형태로부터 빠르게 시작하고 개선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김 연구위원 가상자산업계의 자정적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업자가 합의해 공통된 최소한의 상장(거래지원) 및 상폐기준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가상자산거래업자의 상장관리권한, 상장폐지권한 등을 잘 활용하면 가상자산 발행인에게 적정한 수준의 공시의무도 부과할 수 있다.
가상자산 시장, 앞으로 위축될까? 성장할까?
정 센터장 '규제=악재'가 결코 아니다. 이러한 이분법식 접근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업계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만들어지는 규제는 성장을 촉진시킨다. 자동차 산업 초창기에 적기조례(Red Flag Act)와 같은 규제는 성장을 방해했지만 그후 생긴 규제(교통법, 운전면허제도 등)들은 안정성을 높여 일반 대중들의 참여를 이끌었고 그 결과 자동차 산업은 괄목할 정도로 성장했다. 가상자산 업계도 마찬가지다. 본질을 잘 이해하고 만들어지는 규제는 더 좋은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혁신을 도모하고 산업 발전의 발판으로 작용할 것이다.
김 대표 규제가 있어야 성장한다. 규제라는 게 과하면 안되겠지만, 부작용을 막고 모두에게 공정한 체계적으로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룰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꼭 필요하며, 시장이 규모 있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 연구위원 가상자산 참여자들은 예측보다는 대응의 문제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여러 정치·경제적 변수들이 맞물려 가상자산의 시장전망과 규제내용을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다만 유럽의 MiCA(Market in Crypto-assets) 규제안이나 미국의 '책임금융혁신법' 법안을 살펴보면 두 가지 중요한 규제 방향을 내포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선 가상자산시장은 공시규제 및 불공정거래규제에 있어 자본시장과 유사한 규제를 받게 될 것이란 점이다. 둘째는 일반 증권법의 적용범위를 정하는 증권성 심사는 가상자산업법의 규제관할을 정하는 기준이기에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선율 기자 melod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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