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세상을 떠나기 전 오랫동안 병시중을 들며 자신을 돌봐준 딸 B씨에게만 재산을 물려주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아들이 있지만 말도 없이 이민을 떠난 아들 C씨에게는 한 푼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증인 2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자필로 딸에게 전 재산(30억원)을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했고 얼마 뒤 숨졌다. 그러나 B씨는 A씨의 바람대로 30억원을 그대로 물려받지 못했다. 이민을 떠난 장남이 다시 돌아와 "내 몫의 유산을 내놓으라"며 여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증인도 있고 자필로 서명한 유언장까지 있는데도 왜 A씨의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았을까. C씨는 어머니가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유언장을 썼고 설령 유언장이 맞다고 해도 유류지분을 보장받아야 한다며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유류분이란 법으로 규정한 최소한의 상속지분을 말한다. 이에 법원은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A씨가 쓴 유언장의 효력이 인정되지만 민법에서 유류분청구권을 우선한다며 B씨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유산 가운데 일부를 C씨에게 반환하라고 밝혔다. 유언장을 써도 유류지분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현재 민법상 유류분으로 인정받는 상속지분은 직계비속과 배우자가 법정 상속액의 2분의 1을, 직계존속과 형제자매의 경우 3분의 1이다.
상속분쟁, 해마다 증가 추세
최근 경제난과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상속과 증여를 둘러싼 가족간 분쟁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유류분 반환청구소송은 2005년 158건에서 2010년 452건으로 늘었고 2015년에는 811건을 기록했다. 5년마다 소송과 분쟁건수가 두 세배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얘기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면 유류분 반환청구소송은 수십억 재산이 있는 부자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지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 가진 재산이라고는 집이 전부라는 박모(53)씨. 5살 연상인 남편과 늦게 결혼한 탓에 아이를 낳지 않았고 손자도 없으므로 상속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숨진 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재산 분할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남편 명의로 남겨진 예금과 주식 등 금융자산을 맏형이 가져가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만나 사정을 설명해봤지만 형제도 법률상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남편이 남겨준 재산을 형에게 주고나면 앞으로의 생활이 불안해질 것 같아 집을 팔아 돈을 마련하는 게 나을지 고민하고 있다.
박씨는 몇 년전 노후대책을 논의하며 남편에게 유언장 작성을 해보자는 제의를 했지만 남편은 형이 재산도 많고 그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그 때 유언장이라도 제대로 마련해 놨다면 박씨가 유산을 전부 상속 할 수 있었는데 남편이 내켜하지 않았던 탓에 말을 꺼내지 못했던 게 안타까울 뿐이다. 박씨는 "남의 일이라고 여겼던 상속대책이 내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토로했다.
유언장에 구체적 날짜·장소 명시해야
이처럼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아내와 자녀 또는 형제들간 재산분쟁이 증가하는 가운데 이런 분쟁이 발생하는 재산 범위가 자산 10억원 이하 중산층까지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속과 증여대책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돈이 많든 적든 가족간 재산분쟁을 막기 위해 해야 하는 첫번째는 효력있는 유언서 작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언은 비밀(자필)유언, 녹음유언, 공증유언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비밀유언은 유언서의 내용을 작성자 본인만 알고 있지만 단점은 추후 법원에 신청하여 검증하는 절차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본인의 서명과 구체적인 날짜 등 정확한 내용이 있어야하며 자칫 내용이 미비하면 유언장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녹음에 의한 유언도 가능하다. 이때는 녹음한 날짜, 유언자의 이름, 증인 1명의 녹음이 필요하다. 이때 녹음 목소리에 대해 논란이 있을 여지가 있다면 대비책으로 스마트폰 영상도 준비해두면 좋다. 유언 방식이 간편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공증유언은 2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며 유언자가 직접 공증인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증인은 이때 사회생활을 하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증인이 될 수 있으나 배우자나 상속을 받으려는 사람은 제외된다. 다른 유언 방식에 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또 유언장은 원본과 등본을 유언자에게 전달하고 원본은 반영구적으로 공증사무소에서 보관하기 때문에 분실하거나 파손될 염려가 없다. 시간이나 비용이 다소 들어가지만 분실·위조·파손 등의 위험이 적다는 게 강점이다.
아내에게 상속하는 공증유언 증가
최근에는 경제난으로 재산다툼이 많다보니 자녀보다 모든 재산을 아내에게 상속시킨다는 공증유언을 희망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아예 유류분 청구를 고려해 유언집행을 대행해주는 유언신탁상품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언장을 형식에 맞추어 작성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사후에 법률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방효석 KEB하나은행 투자상품서비스부 변호사는 "유언은 결국 상속재산의 분배 문제이고,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법무, 세무, 금융전문가와 미리 상의해서 준비를 해 둔다면 상속관련 분쟁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상속세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정선 기자 cecilia10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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