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불볕더위가 이어지며 전력수요가 급증하자 정부가 비상에 걸렸다. 당장 이번주부터 대규모정전(블랙아웃) 등 전력난이 눈앞에 닥친 것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냉방기 사용 금지라는 초강수까지 두며 위기극복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효과적이고 획기적인 전력수급 대책없이 국민에게 쥐어짜기식 절전만 강조하는 것은 전력관리 실패 책임을 국민에 떠넘기는 일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전력위기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언제까지 무더위를 참으며 '절전운동'을 해야 하느냐는 것.
12일 산업부는 "8월 셋째주부터 최대 전력수요가 8050만㎾에 이르지만 전력공급은 7700만㎾에 불과해 전력 예비력이 마이너스 340만㎾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사상 최악의 전력난에 대비하기 위한 긴급 절전대책을 발표했다.
◇12일 서울 한낮 온도가 32.5도를 기록했다.(자료제공=뉴스토마토)
여기에는 공공기관에 에어컨 등 냉방기 사용을 모두 금지하고 문 열고 냉방영업 등 전력낭비 단속을 하루에 4회 실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안 쓰는 사무기기 단전, 승강기 이용 제한, 실내 냉방온도 제한, 하루 4시간 비상발전기 가동 등의 방안도 포함됐다.
특히 윤상직 장관은 8일에 전력 기관장들을 모아 긴급 절전대책회의를 연데 이어 지난 주말에는 대국민 담화까지 발표해 "8월 셋째 주가 전력난 고비"라며 "12일부터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전기사용을 줄이는 등 절전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의 절전 강조에 대해 국민들은 언제까지 전력위기 앞에서 국민의 책임만 강조하며 절전만 외칠 것이냐는 불만을 쏟아냈다. 전력수급 정책부터 제대로 만들라는 것이다.
직장인 김모(45세)씨는 "지금이 1970년대 오일쇼크 때도 아니고 온 국민이 나서서 전기 안 쓰는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정부는 마치 서민들이 전기를 제일 많이 쓰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동안 전력공급 늘릴 생각은 안하고 뭐하고 있었냐"고 비판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도 "단기적으로 보면 문열고 냉방영업 등 전력낭비 때문에 전력난이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블랙아웃이 왔던 2011년 9월15일부터 따지면 정부의 전력수급 관리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우선 정부의 전력수요 예측 실패를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했다.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가 발표한 전력수급 기본계획들을 보면 정부는 전력수요를 연평균 2.5%~5%대로 예측하고 있다"며 "그러나 지난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전기 소비증가율이 7%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혀 정부의 에너지 소비예측도 실패했음을 꼬집었다.
◇ 전력수급대책 시행에 따른 수급현황 비교(자료제공=산업통상자원부)
정부의 예측과 실제 수요가 2배나 차이가 난 셈이다. 수요예측 실패는 곧바로 장기적 관점의 발전소 건설과 발전기 확충 등 전력공급 확보에 차질을 빚었다.
에경원 관계자는 "발전소 짓는데 평균 5년 이상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발전설비 용량은 5년전의 수요예측에 따른 것"이라며 "그동안의 인구증가와 기온상승, 전기제품 사용량 증가 등을 고려하면 터무니없는 예측"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나마 있는 전력시설을 제대로 유지·관리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윤 장관은 긴급 절전대책회의에서 발전사 사장단에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전력시설 고장 등의 비상상황에 대비하자"고 주문했지만 불과 이틀 만에 당진화력발전소 등 3기의 발전소가 가동을 멈췄다.
더군다나 국내 발전용량의 30%를 차지하는 원자력발전소는 23기 중 6기가 운전을못 하고 있다. 이처럼 시설이 있지도 활용하지 못하는 전력량이 800만㎾ 상당이나 된다.
◇국내 에너지 발전원별 현황(자료제공=한국수력원자력)
국내 발전량의 대부분을 원자력과 석탄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것도 해결할 과제다. 한국수력원자력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2월 기준으로 원자력 발전량과 석탄 화력발전량은 각각 29.8%와 39.4%로 집계됐다.
에너지원이 다양하지 않고 관련 인프라가 부족하다보니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발전공급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특정발전소와 관련한 사고가 일어나면 꼼짝없이 전력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전력위기를 극복하려면 평소 전기를 아껴 쓰는 수요측면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충분히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전력체계 개편도 중요하다"며 "이제는 절전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전력수급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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