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김나볏기자] 선거에서 미디어와 문화예술 분야 정책은 '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홀히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대선후보 공약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사실상 그리 크지 않다. 공약자체 보다는 실천여부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미디어 및 언론 분야의 경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산업논리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공공논리에 기울어진 차이가 있지만 두 후보가 제시한 정책 방향은 사실 그렇게 새로운 건 아니다.
특히 언론의 공공재적 성격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공영방송 거버넌스와 망중립성 이슈에 대한 두 후보 태도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2007년 대선에서 '신문·방송 겸영'이 언론분야 화두로 떠올랐듯 이번에는 공영방송 거버넌스와 망중립성 이슈가 차기정부 색깔을 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두 이슈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 모두 공감을 표했다. 문제는 결국 '어떻게'로 모아지는 양상이다.
문화예술 분야도 상황은 비슷하다. 문화재정을 현 1.12%에서 OECD 가입국 평균 수준인 2%대로 올리자는 이야기는 이미 수년 전부터 나왔다. 현 정부 들어 이른바 '좌파' 문화예술인 청산, 예술 검열, 예술인 복지 등 여러 가지 사안들이 있었지만 결국 표심을 가르는 쟁점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현장의 예술인들은 그나마 정책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는다. ‘장밋빛 공약’일지언정 예술인 창작과 복지 지원, 한류 확산 정책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문화공약이 나온 것은 고무적이라는 시선이다.
결국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쉽게도 양 후보 모두 세부내용 실천과 법제화를 향한 정밀한 이정표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朴 언론공약, 공공성·산업성·표현의 자유 제시했지만 각론 '빈약'
박 후보는 미디어의 산업적 가치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는 별도의 미디어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대신 지난 10일 발표한 201개 종합공약 가운데 '정보통신' 분야의 세부항목으로서 방송과 인터넷 공약을 하나씩 언급했다.
방송에 대해선 공공성을 강화하고 미디어산업의 핵심으로 육성하겠다는 내용을, 인터넷분야에선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겠다는 방향을 내걸었다. 요컨대 공공성, 산업성 그리고 표현의 자유까지 아우르겠다는 약속이다.
방송공약의 실천방안으로는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IPTV 등 네트워크별로 분산돼 있는 유료방송 법체계 일원화 ▲인터넷, 모바일과 방송 융합 등 스마트미디어 활성화 지원 ▲미디어 융합을 촉진하기 위해 진입과 영업 규제 완화 ▲유료방송 규제 완화와 법•제도 개정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실현가능성에 회의적 시각을 보이는 여론이 많다. 일례로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이란 원론적 주장에 세부방안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박 후보측 윤창번 국민행복추진본부 방송통신추진단장은 지난 5일 '국회 ICT 포럼'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방송 공공성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지배구조를 확 바꿔야 한다"면서도 그 방안으론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할 사회적 공론장을 마련해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실천할 것"이라는 내용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이는 한 달 전인 지난 10월 말 박 후보의 간담회 발언에서 하나도 진전되지 않은 내용이다.
물론 법 개정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송정책에 대한 박 후보의 고민이 그만큼 부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사실 방송 공공성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MBC 사태를 저렇게 방치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인터넷분야 공약으론 ▲통신심의 대폭 축소 ▲임시조치 제도 개선 ▲인터넷사업자의 인터넷 자율정화 지원체제 구축 ▲인터넷 피해구제 제도 확충 등을 담았다.
무엇보다 이용자 중심의 인터넷 서비스를 강조하며 망 중립성, 플랫폼 중립성, 단말 중립성을 원칙으로 언급해 일각에선 방송정책에 견줘 ‘전향적’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공약을 제안한 배경으로 “통신심의 남발과 인터넷포털사의 임시조치 남용으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됐다”고 지적한 점 역시 눈에 띈다. 현 정부를 적시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각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통신심의 축소를 언급한 동시에 ‘반사회적•반국가적 범죄에는 현행 심의 유지’를 단서로 달아 행정심의의 완전한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는 여전히 부족하단 지적을 내놓고 있다.
또 세부내용이나 법제화가 뒤따르지 않는 한 망 중립성 지지 방침도 구호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文 언론공약, MB정책 청산.. 미래비전 좀 더 고민해야
문 후보는 지난 9일 공개한 공약집에서 언론 독립성과 민주주의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모두 10여 개에 이르는 정책방향을 약속했다.
그는 이명박정부 들어 언론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크게 훼손됐다고 강조하면서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의 자격요건•결격사유 강화 ▲이사의 여야동수 추천 ▲중립적 사장추천위원회 도입으로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또 ▲방송보도 제작•편성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방송법을 개정하고 ▲지상파방송과 보도전문채널, 종합편성채널의 소유지분 한도 역시 개정해 궁극적으로 자본으로부터 방송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인터넷 실명제와 관련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익명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며 소셜미디어에 자율규제 원칙을 도입하겠다는 공약도 눈에 띈다.
이와 더불어 정치적 목적의 행정심의를 폐지하는 대신 아동음란물과 항정신성의약품 등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그 외 “여론다양성과 미디어 균형발전”이란 큰 방향을 제시하고 세부공약으론 ▲지역방송 거버넌스 개선 ▲미디어렙법 정비 ▲유료방송의 시청자위원회 설치 의무화 등을 내걸었다.
문 후보의 언론공약은 박 후보 보다 양도 많고 체계적이다. 특히 ▲신문산업진흥특별법(가칭) 제정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방향으로 신문고시 개정 방침을 밝히는 등 신문정책까지 포함한 건 긍정적이다.
관건은 의지와 실천여부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거버넌스라든가 심의 문제는 거듭 제기돼 온 문제”라며 “이건 사실 제도의 문제 보다 운영의 문제일 수 있다”고 밝혔다.
언론연구소 관계자는 “구체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면서도 “과거 반성에 무게 중심이 많이 가 있는 게 아쉽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문 후보의 경우 현 정부 심판의 기조 위에 언론정책 방향을 밝혔지만 엄밀히 말해 공약은 비전 제시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설명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지난 달 토론회에서 문 후보의 언론공약을 평가하며 “인터넷 분야에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도 여전히 정부중심적이고 ICT에 대한 규제중심의 사고에 기반한 정책들이 펼쳐지지 않았느냐”며 “최근에 위헌 결정을 받은 인터넷실명제 정책도 당시에 만들어졌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통신심의도 그 이전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있을 당시부터 있었고, 전자주민증 논란도 그 당시부터 계속돼 왔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를 기준으로 삼지 말고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 시절의 정책기조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까지 포함을 해서 좀 더 다른 패러다임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화예술 공약, 이제 ‘걸음마’..철학과 실천의지 중요
문화부문 주요 공약 사이에는 얼핏 보면 큰 차이가 없다. 문화재정 2% 달성, 문화기본법 제정 등 각 후보 진영에서 내놓은 항목 중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표1> 참고)
그러나 최근 발간된 정책공약집의 세부 항목을 보면 양 후보 간 예술정책 접근 방식이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먼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경우, 문화예술을 산업의 관점에서 주로 접근해 각 지역별로 상세한 공약을 내걸었다.
예를 들면 ▲ 부산에는 센텀 영화, 영상콘텐츠밸리와 아시아 종합촬영소 등을 구축하고, ▲ 경기(서울) 지역에는 한류월드 MICE(회의·관광·컨벤션·전시회) 복합단지 개발 및 유니버설 스튜디오 코리아 리조트 조성 등을 지원하며, ▲ 전남에는 우주항공 체험 관광명소 구축을 추진하는 식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경우에는 창작 지원책과 예술인 복지, 산업 육성책을 고루 담았다.
▲ 문화예술인의 창작환경 지원, ▲ 문화예술인의 창업지원과 사회안전망 확대, ▲ 문화예술인의 안정된 소득과 생활 지원 등의 세 가지 큰 틀 아래, 기초 문화예술분야 지원 확대, 창조인력 고용지원제도 도입, 예술인 복지법 개정 통한 4대 보험 보장,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 확대 등을 약속했다.
전문가들은 일단 전반적으로 볼 때 문화예술 부문에서 예전보다는 다양한 공약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후보진영 간 같은 공약이 나오는 대목도 정치권에서 문화계 내의 큰 수요를 읽고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받았다.
정희섭 한국문화정책연구소장은 “허황된 것도 없지 않지만 공약이 많이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본다.”면서 “당장 실현될 수 없는 것도 있고, 지키기 어려운 것들도 있지만 공약이 나온다는 것은 그것을 실행하도록 압박할 수 있는 근거가 국민에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아쉬운 대목도 있다. 양 후보의 공약 모두 기존 문화부 중심의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문화적 가치를 국정운영 전반에서 확장하는 통섭적 시각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책공약의 논리구조 면에서는 문 후보 측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박 후보의 공약이 열거식인 반면, 문 후보의 공약에는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평가다.
이 사무처장은 “박 후보의 경우 문화정책 전반에 철학적 완결성이 없다. 지역 중심의 퍼주기 공약, 선심성 공약이 너무 많다”면서 “실제로 공약 상에 논리 구조의 충돌이 많다. 예를 들면 문화기본법의 경우 노무현 정부 때부터 참여연대가 제기한 정책인데 박근혜 후보 식의 개발주의 정책에 쓰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나온 역대 대선 후보 공약 중에서는 완결성이 가장 높다고 본다”면서 “국정운영 전반에 걸쳐 문화가치를 확장하는 혁신성은 부족하지만 향후 문화 공공성, 다양성, 생태계적 시각에서 공약의 세부요소들이 잘 짜여져 완결성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익명의 한 문화예술계 인사는 문 후보의 경우에도 “공약의 스토리텔링을 문화민주주의적인 측면에서만 전개하지 않고 일부 타협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한류를 끌어 안기 위해 ‘회색빛 공약’을 내놨고 그러다 보니 박 후보 측과 공약이 비슷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실현 가능성과 실천의지다. 두 후보 모두 문화부문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특히 문화공약 중 재정 목표 같은 경우 이미 여러 차례 대선 때마다 언급된 공약인 만큼 유권자들은 정책의 시행 가능성과 차기 정부의 실천의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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