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빅딜’ 1호가 윤곽을 드러내며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는 감축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정부의 감축 기조와 엇박자를 내고 있습니다. 정부가 감축 목표를 설정할 당시 샤힌 프로젝트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에쓰오일 측은 정부의 감축 논의와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입장입니다.
26일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양사 석유화학 사업재편안을 확정, 정부에 사업재편 계획 승인 심사를 신청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지난 8월 석화업계 구조재편 논의가 시작된 이후 업계 최초로 재편안이 나온 것입니다.
앞서 지난 8월20일 정부는 공급 과잉 문제 해소를 위해 에쓰오일을 포함한 주요 10개 석유화학 기업과 최대 370만톤(t)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연말까지 각 사별 구조개편 계획을 제출하기로 하는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문제는 정부와 에쓰오일 간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감축 목표를 설정할 당시 총 국내 NCC 생산능력을 약 1470만t으로 추산했는데, 이 계산에는 샤힌 프로젝트 가동 시 생산될 에틸렌 180만t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면 에쓰오일은 석유화학 제품의 고부가가치 전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감축 자체에는 동의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달 초 3분기 실적 발표에서 회사는 “정부의 석유화학 산업재편 목적은 노후·저효율 설비 감축과 고효율 중심의 산업구조 고도화에 있다”며, 샤힌 프로젝트는 첨단 설비를 갖춘 만큼 이러한 감축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했습니다. 지난 10월 진행된 샤힌 프로젝트 건설 현장 미디어 투어에서도 에쓰오일은 감축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쓰오일이 국내 기업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계 기업이라는 점은, 정부의 감축 압박이 쉽지 않은 이유로 꼽힙니다. 에쓰오일의 최대주주는 지분 63%를 보유한 아람코 오버시 컴퍼니 B.V.로, 이는 사우디 석유회사 아람코의 자회사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에쓰오일 입장에서는 아직 가동도 되지 않은 설비를 두고 감축을 전제로 공장을 짓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며 “모회사가 사우디 아람코인 만큼 정부가 감축 압박을 넣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구조조정 부담을 떠안는 동안 해외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 감축에 소극적일 경우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합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스스로 구조적 자구책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일부 기업이 그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면 형평성에 어긋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무임승차에 대한 페널티를 언급한 만큼, 구조조정 동력이 약해지지 않도록 이에 상응하는 실질적 대응책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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