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비상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롯데그룹이 부회장단 4명을 전원 퇴진시키는 초강수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롯데그룹은 업황 침체, 그룹 내 유동성 위기 등으로 인해 유통, 화학, 건설 등 주력 사업 전반에 걸쳐 실적 개선에 어려움을 겪어왔는데요. 이 같은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긴축 경영 속 신성장 동력 확보를 통한 그룹 분위기 반전 및 쇄신이 절실한 만큼, '올드맨'들로 구성된 부회장단에 책임을 물어 전체를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는 등 전체 최고경영자(CEO) 20명을 물갈이하는 고강도 인사 드라이브에 나섰습니다.
다만 이 같은 칼바람 속에서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은 롯데바이로직스의 각자대표를 맡게 됐는데요. 신 부사장이 상대적으로 타 사업군 대비 상대적으로 책임 소재에서 자유롭고 안전한 바이오 분야 수장에 오른 것은 물론 지주에서의 컨트롤 타워 역할까지 부여받게 됨에 따라, 롯데그룹의 경영 승계 작업도 한층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롯데는 26일 36개 계열사의 이사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2026년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롯데는 비상 경영 상황 속 턴어라운드를 만들기 위한 거버넌스 체계 개편과 핵심 사업 경쟁력 회복을 위한 지속적인 혁신을 확산시킬 수 있는 인적 쇄신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습니다.
◆ 유통·건설 주요 계열사 20명의 CEO들 대폭 물갈이
롯데는 이번 인사를 통해 고강도 인적 쇄신을 위해 전체 CEO 3분의 1 규모인 20명의 CEO들을 교체했습니다.
특히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 이영구 롯데 식품군 총괄대표 부회장,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부회장,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이사 부회장 등 4명 모두가 일선에서 물러나고, 주요 계열사 대표들도 상당수 바뀌었는데요. 정기 인사를 통해 부회장단 전원이 일선에서 물러나는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4명의 부회장들은 젊고 새로운 리더십 중심으로 혁신의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용퇴를 결정했다는 것이 롯데 측 설명입니다.
고정욱 사장과 노준형 사장은 롯데지주 공동대표이사로 내정됐는데요. 두 공동대표는 재무와 경영관리, 전략과 기획 등 두 파트로 나눠 전문성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조직을 운영합니다. 또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에는 롯데지주 재무2팀장 최영준 전무가, 롯데지주 경영혁신실장에는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대표이사 황민재 부사장이 각각 내정됐습니다.
박두환 롯데지주 HR 혁신실장과 롯데GRS를 이끌었던 차우철 대표는 각각 사장으로 승진했습니다. 박두환 신임 사장은 직무 기반 HR제도 도입, 생산성 고도화 등 그룹 전반에 HR혁신을 추진한 점을 인정받았습니다. 또 차우철 사장은 롯데GRS 재임 시절 기존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고 신사업 경쟁력 강화, 글로벌 사업 확장 등의 공로를 인정 받았습니다.
내수 침체, 온라인 시장 급부상으로 오랜 기간 부진을 면치 못했던 유통 계열사들의 경우 CEO들이 대거 교체됐습니다. 롯데백화점, 롯데마트?슈퍼, 롯데e커머스 등 유통 주요 계열사를 비롯해 롯데웰푸드의 수장들이 모두 바뀌었는데요.
또 롯데e커머스 대표에는 온·오프라인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e커머스사업부 구조조정과 턴어라운드 전략수립을 추진했던 추대식 전무가 승진했습니다. 아울러 롯데웰푸드 대표이사에는 서정호 롯데웰푸드 혁신추진단장 부사장이 내정됐습니다. 서 부사장은 올해 7월 롯데웰푸드 혁신추진단장으로 부임해 경영진단과 함께 롯데웰푸드의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끌어 왔습니다.
한편 2022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오랜 기간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롯데건설도 CEO가 교체됐습니다. 롯데건설 대표이사에는 오일근 부사장이 승진 내정됐는데요. 오 부사장은 PF 사태로 약해진 롯데건설의 재무 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밖에 화학의 경우 지난해에 이어 LC USA, 롯데알미늄, GS화학 등에서 쇄신 기조를 이어갔습니다.
◆ 바이오로직스 공동대표 맡은 신유열…경영 승계 본격화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으로 그룹 전체의 글로벌 사업 및 신사업 전략을 지휘했던 신유열 부사장의 역할도 확대됐습니다.
신 부사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박제임스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와 함께 각자 대표를 맡았는데요. 신 부사장은 그룹의 주요 신사업 중 하나인 바이오사업을 박 대표와 공동 지휘하는 것은 물론, 롯데지주에 신설되는 '전략 컨트롤 조직'에서도 중책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신동빈 회장이 그룹의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바이오 사업군의 경우 유통, 화학, 건설 등에 비해 비교적 실적 압박에서 자유로운 사업군으로 평가되는데요. 게다가 신 부사장은 지주에서의 컨트롤 역할까지 맡게 된 만큼, 바이오 사업과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경영 수업에 본격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아울러 롯데는 9년간 유지한 사업 총괄 체제를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롯데는 2017년 비즈니스 유닛(BU·Business Unit) 체제, 2022년에 헤드쿼터(HQ·HeadQuarter) 체제를 도입하며, 유관 계열사의 공동 전략 수립과 사업 시너지를 기대한 바 있는데요.
롯데는 빠른 변화 관리와 실행 중심의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해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를 강화합니다. 계열사는 대표와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을 바탕으로 핵심사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는 방침입니다.
다만 롯데 화학군은 HQ를 폐지하고 전략적 필요에 따라 PSO(Portfolio Strategy Office)로 조직을 변경해 사업군 통합 형태의 거버넌스를 운영합니다. 롯데 화학군 PSO는 기능 조직으로서 화학 계열사들의 장단기 전략과 사업 포트폴리오 연결 및 조정 등 시너지 창출 역할을 수행할 계획입니다.
롯데 관계자는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 신속한 변화 관리와 실행력 제고를 위한 성과 기반 수시 임원 인사와 외부 인재 영입 원칙을 유지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유열 신임 롯데바이오로직스 공동대표. (사진=롯데지주)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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