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바르는 인슐린’ 시대 온다
중국 연구진, 피부 통과 ‘OP 폴리머’ 개발
동물 실험에서 주사만큼 빠르고 오래 지속
2025-11-21 09:47:02 2025-11-21 14:44:22
당뇨병 환자가 바늘로 피부를 찌르지 않고, 연고나 패치처럼 피부에 바르는 인슐린만으로 혈당을 조절할 수 있을까요. 지난 1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이 같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물실험 결과가 실렸습니다.
 
중국 저장대학교 연구진이 피부 장벽을 스스로 통과하는 새로운 고분자 물질을 개발해 인슐린에 붙인 뒤, 쥐와 미니돼지에 바르는 방식으로 투여한 결과입니다. 이른바 ‘바늘 없는 인슐린’ 개념이 학술지 논문으로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중국 저장대 연구진이 개발한 ‘OP폴리머’에 대한 인체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인슐린을 피부에 바르는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이미지=챗GPT)
 
저장대 유칭 선(Youqing Shen) 교수 연구진은 인슐린에 ‘OP’라는 고분자 사슬을 화학적으로 결합한 뒤, 크림 형태로 만들어 실험동물 피부에 바르는 방식으로 테스트했습니다. 빠른 피부 투과성을 지닌 양이온성 중합체인 ‘OP’가 각질층, 생존 표피 및 진피를 효율적으로 투과해 혈류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연구진은 먼저 제1형 당뇨를 유도한 실험용 생쥐에 이 크림을 바르고, 혈당 변화를 12시간 동안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바른 지 1시간 안에 혈당이 정상 범위(50~200mg/dL) 안으로 떨어졌고, 이 상태가 약 12시간 동안 유지됐습니다. 대조군으로 사용한 피하 인슐린 주사는 1시간 내 급격한 혈당 강하 효과는 비슷했지만, 4시간 정도 지나자 다시 고혈당으로 되돌아오는 ‘리바운드’가 나타났습니다. 
 
피부 pH 차이 이용한 통과 원리
 
연구진은 사람 피부와 구조나 두께가 비슷한 미니돼지에서도 같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미니돼지 복부 피부에 인슐린-OP 크림을 바르자 2시간 이내 혈당이 떨어지기 시작해, 6시간 이후 약 100mg/dL 수준까지 내려왔고, 이후 12시간 동안 정상 범위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에, 단순히 인슐린만 바르거나, 기존에 다른 약물에 쓰이는 폴리에틸렌글리콜(PEG)에 인슐린을 붙여 바른 경우에는 혈당 변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인슐린이 피부를 통과해 혈류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당뇨병 환자에게 먹는 알약이나 간편한 패치로 인슐린을 주고 싶다는 발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인간 피부의 강력한 장벽 구조였습니다. 특히 인슐린처럼 분자량이 큰 단백질은 일반적인 패치로는 사실상 투과가 되지 않습니다. 연구진이 선택한 길은 기존처럼 피부를 뚫거나 손상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피부 구조에 맞춰 성질을 바꾸며 스스로 안쪽으로 들어가는 물질’을 설계한 것입니다.
 
연구진이 주목한 핵심은 피부의 pH(산도) 차이입니다. 피부 맨 바깥층(피지·각질층)은 산성(pH 4~5)인데, 조금 안쪽에 있는 진피·표피는 중성에 가까운 pH 7 전후로 차이가 납니다. 연구진은 OP가 이 차이를 이용해 전하 상태를 스스로 바꾸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합니다.
 
피부 표면(산성)에서는 OP가 양전하(+)를 띠며, 피부 바깥층을 이루는 지방산(음전하)과 결합해 표면에 달라붙게 되는데, 피부 안쪽(중성)으로 조금 들어가면 OP가 전기적으로 중성으로 바뀌면서 지방과의 결합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깊은 층으로 확산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슐린은 OP에 매달린 채 함께 이동하는 것입니다. 
 
선 교수는 <사이언스 뉴스(Science News)>와의 인터뷰에서 “OP가 ‘기관차’ 역할을 하고 인슐린은 ‘화물’처럼 딸려 들어간다”고 비유했습니다. 각질층 깊은 곳을 통과한 뒤, 인슐린-OP는 표피·진피층의 세포막 표면을 따라 옆으로 퍼져 나가다가, 결국 림프관과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운반됩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이것을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세포막 위를 ‘뛰어다니며(hopping)’ 퍼진다”고 표현했습니다. 단백질이 세포 안에서 분해되는 일 없이 자기 할 일을 한다는 비유로 보입니다.
 
세계 당뇨의 날을 맞아 시민들이 혈당 체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형광물질 이용 혈액·장기 분포도 분석
 
연구진은 형광물질을 붙인 OP-인슐린을 이용해 어디로 얼마나 이동하는지도 자세히 분석했습니다. 피부를 통과한 OP-인슐린은 혈액 내 인슐린 농도가 1시간 전후에 최고치에 도달했다가, 12시간 동안 서서히 떨어지는 패턴을 보였고, 장기 분포에서는 간과 지방조직, 골격근 등 혈당 조절에 핵심적인 기관들에 많이 축적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슐린 주사를 맞았을 때와 초기 2시간 정도 혈중 농도 곡선이 거의 비슷하지만, 이후에는 OP-인슐린 쪽이 더 오랫동안, 더 완만하게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연구진은 설명했습니다. 연구팀은 또한 인슐린에 OP를 결합해도 인슐린 수용체에 대한 결합력 등은 기존 인슐린과 거의 차이가 없음을 시험관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새로운 약물 전달 방식에서 항상 제기되는 우려는 안전성입니다. 특히 피부 장벽을 통과하는 물질은 자칫하면 염증이나 알레르기, 조직 손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 부분을 검증하기 위해 동물에서 반복 도포 실험을 진행했는데, OP-인슐린을 여러 차례 바른 쥐와 미니돼지의 피부를 조직검사한 결과, 각질층 두께 변화나 미세 구조 손상, 염증세포 침윤, 세포 사멸 증가 등이 관찰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혈액검사에서도 간 기능이나 신장 기능, 혈구 수치 등에서도 유의한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논문에서 “쥐와 돼지에서 수일~수주 단위로 관찰한 결과일 뿐”이라며 “당뇨병 환자는 수십 년간 인슐린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장기 독성 평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후속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단백질·펩타이드 약물도 시험”
 
이번 연구는 인슐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실제로는 피부를 통과할 수 없었던 각종 단백질·펩타이드 약물에 대한 ‘플랫폼 기술’ 가능성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선 교수팀은 이미 체중감량제로 널리 알려진 ‘오제믹(Ozempic)’의 유효 성분(GLP-1 유사체) 등을 대상으로 OP를 이용한 피부 전달 실험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까지 나온 결과만 놓고 보면 폴리머를 활용한 기술은 인슐린 패치 개발의 유망한 후보입니다. 하지만 사람 피부는 동물보다 두껍고 복잡하며, 사용 기간도 훨씬 길기 때문에 임상시험에서 용량 조절의 정밀도와 장기 안전성이 입증돼야 합니다. 이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인 미국 MIT 로버트 랭어(Robert Langer) 교수는 <사이언스 뉴스(Science News)>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단계는 인간 대상 시험으로, 효과성과 장기 안전성 평가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사와 바늘은 오랫동안 인슐린의 상징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슐린을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당뇨병 환자는 수천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여러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네이처에 실린 이번 연구는 앞으로 ‘바늘 없는 당뇨 치료 시대’의 서막이 될 수 있을지 궁금증과 기대감을 키우기에 충분합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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