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살아있는 DNA, 실시간으로 본다”
네덜란드 연구진, 신형 센서 개발
설계정보와 매뉴얼, 온라인 공개
2025-11-25 11:10:53 2025-11-25 14:44:25
세포 속에서 일어나는 DNA 손상과 복구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신형 센서가 개발됐습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University of Utrecht) 연구진이 만든 이 도구는,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정지 화면’처럼 끊어 찍어야 했던 DNA 손상과 수리 과정을 연속 영화처럼 보여주는 혁신적 기술입니다. 암 연구나 신약 안전성 평가, 노화 생물학까지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이 연구 결과는 2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실렸습니다. 
 
새로운 DNA 염기서열 분석 기술과 슈퍼컴퓨터의 결합으로 유전학자들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인간 게놈의 일부를 염기서열 분석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NIH)
 
40년 난제 해결한 신형 센서
 
우리 몸의 DNA는 매일 자외선·화학물질·대사 과정 등으로 손상됩니다. 대부분 즉각 복구되지만, 이 과정이 어긋나면 암·노화·퇴행성 질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순간’을 관찰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전통적 방법은 손상 시점마다 세포를 죽여서 고정한 뒤 항체로 염색하는 방식으로 순간 포착한 ‘스냅샷’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세포에서 손상에서 복구로 이어지는 전체 흐름을 연속적으로 보는 것은 기술적으로 막혀 있었습니다.
 
위트레흐트대 튼카이 바우벡(Tuncay Baubec) 교수팀은 이를 정면 돌파했습니다. 연구진은 세포가 원래 DNA 손상 위치에 잠시 붙였다 떼는 단백질의 작은 조각을 이용해, 손상 부위를 스스로 찾아가고 곧바로 떨어지는 접촉형 센서를 개발했습니다. 바우벡 교수는 “기존 항체나 나노바디는 DNA에 너무 강하게 매달려 오히려 수리 과정을 방해했다”라며 “이 센서는 본래 세포가 쓰던 자연 단백질을 활용해 ‘방해하지 않는 관찰’이 가능해졌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센서가 DNA 손상 지점을 만나면 형광 신호가 반짝 켜지는 방식이다. 세포 속에 생성되는 손상 지점이 실시간으로 ‘녹화’되면서, 연구자들은 손상 발생 시점, 수리 단백질의 집결, 문제 해결의 순간까지 이어지는 생생한 연속 장면을 얻게 됩니다. 연구진은 58초 분량의 유튜브 영상을 제작해 위트레흐트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살아 있는 동물에서도 작동
 
연구를 주도한 리처드 카르도조 다 실바(Richard Cardoso da Silva) 박사는 “새 약물을 테스트하다가 센서가 손상 지점에 정확히 반응해 ‘초록빛’이 번쩍 켜지는 걸 봤을 때, ‘이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초록빛’은 손상된 DNA가 만들어내는 신호에 센서가 붙을 때 나타나는 형광 반응입니다. 이전 방법에서는 같은 실험을 위해 10개의 시점별 실험을 따로 수행해야 했지만, 이번 센서는 한 번의 실험으로 DNA 수리의 전 과정을 영상으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 실바 박사는 “데이터의 양과 해상도, 정확성이 모두 달라진다. 무엇보다 ‘살아 있는 세포 속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유트레흐트 대학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유튜브 영상은 살아있는 세포 내부에서 작동 중인 형광 센서를 보여준다. 이 센서들은 DNA 손상 부위에 결합하는 순간 밝은 녹색 점으로 나타난다. (사진=University of Utrecht 홈페이지 캡처)
 
연구진은 이번 기술은 배양 세포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모델생물 ‘예쁜꼬마선충(C. elegans)’에 이 센서를 투입한 결과, 선충의 생식세포가 발달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DNA 절단(DNA breaks)까지 선명하게 포착했습니다. 바우벡 교수는 “이 센서가 실제 생체에서도 잘 작동한다는 것은 유전학이나 발생학, 질병 모델 연구 등 응용 범위가 무한히 넓어진다는 뜻”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연구진은 센서 단백질에 다른 분자를 붙이면 게놈의 어느 지점이 손상되는지 지도 작성이 가능하고, 손상 부위에 모여드는 단백질 구성의 타임라인을 분석할 수 있으며, 개별 약물의 DNA 손상 패턴을 정밀 측정하는 등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실험 설계가 가능해진다고 밝혔습니다. 실바 박사는 “이 센서는 ‘당신의 질문과 창의력에 따라 무한한 활용이 가능해지는 플랫폼’”이라고 표현합니다.
 
특히 DNA 손상을 유발해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제 개발 과정에서, 정확한 손상량 측정은 핵심 평가 요소인데, 이 센서를 활용하면 더 빠르고, 더 저렴하고, 더 정확한 평가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방사선 노출, 환경 독성 물질, 노화로 인한 DNA 수리 능력 변화 등 임상 연구 전반에서도 응용 가능성이 큰 것으로 기대를 모읍니다.
 
‘사용 요청’에 오픈 소스 공개
 
위트레흐트대 연구진은 이 기술을 독점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논문 발표 전부터 요청이 이어지자 설계 정보와 사용 매뉴얼을 온라인에 전면 공개했습니다. 바우벡 교수는 “누구든 당장 실험실에서 사용할 수 있게 모두 공개했다”며 “DNA 수리 연구의 속도가 세계적으로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정된 이미지 기반의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생명체의 시간적 흐름을 그대로 읽어내는 센서를 활용한 다양한 연구가 활기를 띨 것으로 보입니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실린 논문의 제목은 ‘공학적으로 설계된 염색질 판독기가 살아있는 세포 및 생물의 손상된 염색질 역학을 추적한다(Engineered chromatin readers track damaged chromatin dynamics in live cells and animals)’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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