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각질 제거 대신 ‘장벽 복원’이 스킨케어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미국의 과학매체 <사이언스 뉴스(Science News)>는 “글래스 스킨(glass skin)이나 글레이즈드 도넛(glazed donut) 같은 유행어 속에는 피부 장벽이라는 분명한 과학적 사실이 숨어 있다”고 전합니다. 이 기사에서 텍사스의 화장품 화학자 밸러리 조지(Valerie George)는 “피부는 단순한 외피가 아니라 병원균과 수분 손실을 막는 방패”라며 “장벽이 무너지면 그 어떤 고가의 화장품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친 스크럽과 산성 성분으로 피부 표면의 각질을 강하게 제거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그녀는 “그건 사람들의 피부를 망가뜨리는 일”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화장품 매장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들이 화장품을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시스)
<사이언스 뉴스>는 “이제 한국식 스킨케어 루틴의 인기에 영향을 받아 서양 트렌드도 장벽 회복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으며, 이는 맑고 매끄러우며 건강해 보이는 피부로 이어진다”며 한국식 스킨케어를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많은 세계인들이 지금은 피부 장벽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는 피부과학의 기본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피부는 ‘벽돌과 모르타르’ 구조”
피부과학계에서 장벽은 오랫동안 ‘벽돌과 모르타르 모델’로 설명돼 왔습니다. ‘각질세포가 벽돌, 세라마이드·콜레스테롤 등이 섞인 지질이 모르타르 역할을 해 벽돌 틈을 메운다’는 이론은 1980년대 UC버클리의 피터 엘리아스(Peter M. Elias) 교수가 처음 제시한 것입니다.
피부가 완전히 건조해지면 장벽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됩니다. 의학적으로 설명하면 이 구조가 무너지면 ‘경표피 수분 손실(TEWL, Transepidermal Water Loss)’이 증가해 건조·홍반·자극 같은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경표피 수분 손실(TEWL)은 피부 장벽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의학적 지표입니다. ‘장벽 강화’는 학술적으로 TEWL 수치를 낮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 스킨케어 트렌드가 각질 제거 중심에서 ‘장벽 회복 루틴’으로 바뀐 것도 이 때문입니다.
피부는 항상 수분을 잃고 있으며, 이 때문에 보습은 피부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사이언스 뉴스는 보습의 3가지 메커니즘을 ‘수분을 끌어당기고(bind), 막을 형성하고(block), 빛을 반사하는(reflect)’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피부과에서 보습작용을 위해 권하는 3가지 제품의 표준 원리와 일치합니다. 우선 글리세린, 히알루론산 등의 습윤제(humectant)는 공기와 진피에서 수분을 끌어오는 ‘수분 자석’입니다. 바셀린으로 대표되는 오일이나 왁스 같은 밀폐제(occlusive)는 피부 표면에 얇은 막을 형성해 수분 손실을 차단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습제(emollient)는 각질세포 사이의 틈을 메우고 빛을 반사해 피부 표면을 부드럽고 윤기 있게 만듭니다.
빛나는 피부의 비밀은 장벽이다. 장벽이 건강하면 피부는 자연히 빛난다.(이미지=Gemini 생성)
건강한 피부는 피부 세포의 대사 과정을 표적으로 하는 활성 성분으로부터도 혜택을 받습니다. 주름 개선에 효과적인 비타민 A 기반 화합물인 레티노이드나 항산화 효과가 있는 비타민 B 계열의 나이아신아마이드 등이 대표적입니다. 다른 성분과 달리 레티노이드, 나이아신아마이드 같은 활성 성분은 살아 있는 세포가 존재하는 표피 깊은 층에서 작용해야 합니다. 문제는 피부 장벽의 엄격한 규칙입니다. 지난 2000년 네덜란드의 얀 보스 박사는 “분자량 500달톤(Da) 이상의 물질은 피부를 거의 통과할 수 없다”는 ‘500달톤의 법칙’을 발표했습니다. 이 때문에 화장품 업계는 성분의 크기와 전기적 성질을 조절하거나, 리포좀·나노 캡슐에 감싸 침투를 돕는 기술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나이아신아마이드는 세라마이드 합성을 증가시켜 장벽을 강화하는 것이 임상적으로 입증돼 있습니다. 레티노이드는 세포핵 수용체와 결합해 세포 재생 속도를 높여 주름과 탄력을 개선하는데, 침투가 어려운 크기여서 침투를 돕기 위해 용매를 첨가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레티노이드와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 자극이 적은 식물성 성분 바쿠치올(bakuchiol)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0년 영국피부학회지(BJD)에 실린 임상시험에서는 “레티노이드와 동등한 효과, 더 적은 자극”이라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건강한 피부 장벽엔 유익균도 많아
최근 피부 장벽은 이제 세포·지질뿐 아니라 미생물 생태계까지 포함한 통합적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한 분야는 피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연구입니다. 건강한 피부 장벽에는 유익균이 다양하게 존재하며, 장벽이 손상되면 유해균이 증가해 염증이 악화되는 패턴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빛나는 피부의 비밀은 장벽이다. 장벽이 건강하면 피부는 자연히 빛난다”라고 말합니다. 뉴욕 위일 코넬 의과대학의 미용 피부과 전문의 해들리 킹(Hadley King) 교수는 <사이언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피부를 얇고 투명하게 만드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장벽을 회복하고 보습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피부의 빛을 만드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합니다. 투명한 광채를 원한다면 피부 장벽 강화에 집중하고, 촉촉하고 유리처럼 반짝이는 피부를 원한다면 보습제를 추가하라는 것이 과학의 권고입니다. 건강한 피부가 아름다운 피부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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