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구리에 50%의 고율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면서, 미국 내 생산 거점을 둔 한국 완성차와 배터리 업계가 타격을 받게 됐습니다. 전기차에는 내연기관차보다 최대 4배 이상 많은 구리가 쓰이고, 배터리 핵심 소재인 동박은 구리에 기반합니다. 따라서 이번 조치로 인해 완성차와 배터리 기업들의 생산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SK넥실리스가 제조한 동박. (사진=연합)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강력한 국가 안보 평가를 받은 뒤, 구리에 대한 50%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고 올렸습니다. 발효 시점도 오는 8월1일로 못 박았습니다. 그는 “구리는 반도체, 항공기, 선박, 탄약, 데이터 센터, 리튬 이온 배터리, 레이더 시스템, 미사일 방어 시스템과 우리가 현재 개발 중인 극초음속 무기에 필수적”이라며 “구리는 국방부에서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재료다. 미국은 다시 한번 지배적인 구리 산업을 건설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 행정부는 철과 알루미늄에 이어 미 내에서 세 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구리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근거로 ‘국가 안보’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 등 적절한 조처를 통해 수입을 제한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조항을 앞세워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등에 25~50%의 품목별 관세를 매겨왔고 이번엔 구리가 그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이미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25% 관세가 매겨진 상황에서 미국 내에서 차량과 배터리를 생산 중인 한국 기업들은 구리 원가 상승 부담까지 더해져 이중고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특히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2~4배 많은 구리를 필요로 합니다. 배터리에서는 음극재 핵심 소재로 구리를 얇게 펴 만든 동박이 쓰이는데, 배터리의 품질과 에너지 밀도를 결정짓는 요소로 리튬 배터리 무게의 약 13%, 원가의 10%를 차지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문제는 구리가 글로벌 수요가 많은 핵심 금속이라는 점입니다. 구리는 철과 알루미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금속으로 미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구리 소비국입니다. 하지만 전체 수요의 약 55%만 자급하고,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차량과 배터리를 생산하는 한국 기업들은 한국, 중국 등에서 구리를 미국으로 들여와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관세 부과가 본격화되는 8월 이후 이를 미국산으로 전면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가격이 비싼 데다 공급도 충분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조달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업계에선 장기적으로는 원자재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전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이내라 당장은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구리 가격 상승 등으로 생산비 부담은 불가피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도 “차량 부품 등에 구리가 많이 사용되고 있기에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는 가격경쟁력 약화와 맞물러 이중의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산 배터리보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고전 중인 한국 배터리 업계에 구릿값 부담은 또 다른 악재”라며 “전기차 수요가 둔화된 가운데 원자잿값까지 오르면 차·배터리 업계가 모두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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