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각국에 상호관세를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분야를 겨냥한 추가 관세를 시사하면서 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사실상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이 통제하려는 의도라는 해석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업계에서는 일단 상황을 주시하면서, 상호관세를 앞두고 미국과 협상할 정부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전문가들은 시간에 쫓기기보다 ‘기브 앤 테이크’의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지난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주재한 내각회의에서 반도체와 의약품 등을 겨냥해 관세 발표를 시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그들(반도체기업)에게 1년~1년 반의 기간을 줄 텐데 그 전에 미국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며 “매우, 매우 높은 세율의 관세가 부과될 것이다. 예를 들어 200% 같은 수준”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반도체 관세 부과와 관련한 상무부의 조사는 이달 말 완료될 예정인데, 상호관세 발효일이 다음달 1일인 만큼 시기도 겹칩니다.
반도체 관세는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합니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은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했을 때 관세 등 적절한 조치를 통해 수입을 제한하는 권리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결국 1년 여의 시간 안에 미국에 투자하라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반면,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미국에 투자를 진행한 상황입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 건설을 준비 중입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별도의 관세 부과가 예고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업 입장에선 ‘기회 비용’이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2분기 잠정 실적 공개에서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로 이미 영업이익이 55.94%까지 줄어들었는데, 향후 관세 부과까지 더해지면 손실을 가늠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사정을 모르지 않을 트럼프 대통령이 이토록 관세 압박을 가하는 데에는, 메모리 분야를 포함한 반도체 생산시설 전체의 미국 이주를 종용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안동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A부터 Z까지 모두 미국에서 하라는 것”이라며 “상호관세에 이어 품목별 관세까지 따진다는 건 결국 다 미국에서 만들라는 이야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업계는 반도체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속단하기 어려운 만큼 일단 긴장감 속에서 추이를 주시한다는 입장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해외 파운드리 업체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미 공급망이 다변화했다”며 “그 과정에서 어느 국가 관세를 매길지 같은 게 불확실하고, 미 정책도 구체적으로 나온 게 없어서 신중하게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반도체 업계가 기댈 곳은 결국 정부입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달리 우리나라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 당선 전후로 우리나라가 미국에서 해온 것들을 상기시켜 ‘기브 앤 테이크’라는 자세로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수에 말리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반도체 부품 원가가 올라가면 그걸 가져다 쓰는 미국 빅테크 기업도 부담이 커지는 만큼, 강력한 관세를 실제로 매기기는 어렵다”며 “트럼프 대통령에 휘둘리지 말고,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걸 최대한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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