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와 코인 사이’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스테이블코인
2025-07-04 16:47:44 2025-07-04 16:47:44
최근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련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시중은행의 발행 허용 여부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은행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초래할 수 있는 통화정책의 왜곡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처와 사용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난 5월 '디지털 G2를 위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설계도' 세미나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은행 발행·지급결제, 사실상의 화폐 
 
결론부터 얘기하면 시중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하고, 이것이 시중은행을 통해 실물경제로 전달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시중은행은 이러한 통화정책 전달경로의 핵심 주체로서 한국은행의 정책 의도를 충실히 실물경제에 전달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은행들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또 다른 법정화폐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입니다. 은행이 원화와 일대일 교환을 보장하는 디지털 자산을 발행하고 이것이 광범위하게 유통된다면 이것이 화폐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비록 법적으로는 스테이블코인이 법정화폐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경제적 기능과 효과 면에서는 제2의 법정화폐나 마찬가지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일반적인 지급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도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당장 선불지급 사업자들이 블록체인을 이용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지급결제 기능은 법정화폐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입니다. 만약 은행 발행 스테이블코인이 상점에서의 물건 구매, 급여 지급, 세금 납부 등 일상적인 거래에 사용될 수 있다면 이는 사실상 원화와 동등한 지위를 갖는 또 다른 화폐를 인정하는 셈입니다. 
 
한 국가에 복수의 화폐가 존재한다는 것은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서 경제 질서의 근본적인 혼란을 초래합니다. 거래 당사자들은 어떤 화폐로 계약을 체결할지, 어떤 화폐로 가격을 표시할지 혼란스러워할 것이고, 환율 변동 리스크까지는 아니더라도 각 스테이블코인 간의 미묘한 가치 차이로 인한 차익거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거래 비용을 증가시키고 경제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스테이블코인, 제한적 역할 필요 
 
스테이블코인은 제한적 용도로 쓰일 때 경제적 순기능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법정화폐 시스템을 구축 중입니다. CBDC가 도입되면 디지털 거래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지급결제 영역에 진출할 필요성은 사실상 없어집니다.
 
그렇다고 스테이블코인의 유용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변동성이 큰 가상자산 거래의 안정적인 거래 수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자산의 가격이 급변할 때, 투자자들이 일시적으로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수단 또는 거래의 도구로서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한적 용도에서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허용한다면 그 사용 범위를 명확히 제한해야 합니다. 즉, 가상자산 거래소 내에서 다른 가상자산과의 거래쌍으로만 사용하고, 일반적인 상거래나 지급결제에는 사용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미국에서 USDC나 USDT가 사용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이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 상점에서는 받지 않으며, 주로 가상자산 거래소 내부에서만 유통됩니다.
 
USDT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일부 준비금을 비트코인이나 금으로 보유하면서 불투명한 재무에 대해 비판이 많았다. (사진=Gemini AI) 
 
엄격한 발행사 선정과 감독·규제 필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도 신중히 선택해야 합니다. 통화정책 전달경로의 핵심에 있는 시중은행이 아닌, 가상자산사업자 등이 엄격한 규제하에서 제한적으로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통화정책 전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통화정책을 왜곡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철저한 감독과 규제가 필요합니다. 발행사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액에 상응하는 원화를 100% 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하며, 이에 대한 정기적인 감사와 공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이 지급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상원을 통과한 일명 지니어스 법안을 마련했는데, 스테이블코인이 당국의 강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법안은 기존 USDC, USDT 등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100% 준비금(주로 미 국채)을 두도록 했습니다. 사실상 중국 자본 논란이 있는 USDT를 겨냥한 규제입니다. USDT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일부 준비금을 비트코인이나 금으로 보유하면서 불투명한 재무에 대해 비판이 많았습니다. 
 
중요한 건 역시 미국에서도 법정통화는 달러 뿐이라는 점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당사자 간 합의 거래 및 코인거래를 위한 코인에 불과합니다. 한국 시중은행들의 요구처럼 스테이블코인이 법정통화가 아니기에 지급결제용으로 사용될 수 없고 미국 은행에서 발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할 때 이런 글로벌 기준을 참고해 스테이블코인이 시장을 교란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민남기 토마토체인 대표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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