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박혜정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1호 민생법안인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재계의 시선이 ‘노동 정책’에 쏠리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상법 다음으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 주4.5일제 등 재계가 우려하는 노동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오는 까닭입니다. 특히 이 대통령과 여당이 노동 정책과 관련해 ‘속도전’을 예고하면서 재계는 긴장 속에서 숨 죽이고 있습니다. 재계에서는 관련 정책이 이 대통령이 야당 시절부터 견지해 온 핵심 공약인 만큼 변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속도조절 등을 조심스레 당부하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취지에 따라 재계 역시 변화에 맞게 적응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지난 2022년 9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참석자들이 요구사항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4일 재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의 첫 중점 법안으로 상법개정안 처리를 완료한 여당은 곧바로 7월 임시국회를 열어 ‘노란봉투법’ 등 쟁점 법안을 처리할 채비에 나섰습니다.
노란봉투법은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는 동시에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핵심은 원청 사용자 개념의 확대로 법이 통과되면 하청기업 소속 노동자들의 사용자도 원청이 될 수 있기에 직접 교섭의 길이 열립니다. 또 파업과 관련 손해배상 청구 범위도 크게 좁아지게 됩니다.
노동권 강화 측면에서 의미 있는 법안인 만큼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의 빠른 추진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계는 사용자 범위 확대에 따른 불필요한 갈등과 대응력 약화 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 파업에 따라 회사에 손해가 있더라도 배상 책임을 묻기 어렵기에 되레 불법행위로 얼룩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대선 전 토론회에서 “노동조합에 부여된 비교와 권리와 비교하면 기업의 대응 수단이 너무 부족한 점도 노사관계 불안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법마저 개정된다면 원청을 하청 노사관계의 당사자로 끌어들이게 돼 우리 산업의 기본적인 생태계마저 붕괴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재계에서는 전날 국회 문턱을 넘은 상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노란봉투법 통과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또한 새정부 출범 초기 노동 정책에 대한 공개 반발의 부담도 큰 터라 조심스레 숨을 죽이며 상황을 지켜보는 모습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계 관계자는 “새정부가 들어서면 상법 개정이나 노란봉투법을 바로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크게 놀랍지는 않다”며 “엄살 떠는 것이 아니라 가뜩이나 쉽지 않은 상황이니 만큼 급하게 추진하기 보다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재계와 소통을 통해 보완장치를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기업에 유리한 법안이 아니지만, (노란봉투법도) 통과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이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수위 조절’ 등 정치권에서 좀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주4.5일제…이 “빨리 가고 싶다”
주4.5일제 등 이 대통령의 노동 공약에 대해서도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전날 취임 30일을 맞아 진행된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주4.5일제와 관련한 질의에 “가능하면 정책적으로 빨리 가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이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반드시 해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강제로 법을 통해서 일정 시점에 시행하는 것은 갈등, 대립이 너무 심해서 불가능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가능한 부분부터 조금씩 점진적으로 해 나가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주4.5일제 등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빠른 정책 변화를 예고하면서 유연하게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다만, 재계에서는 주4.5일제를 개별 기업이 선제적으로 하기에는 부담이 큰 터라 말을 아끼면서도 정부 정책 변화를 당장은 지켜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안 발의 야5당·노동·시민사회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학계에서는 노란봉투법 등 새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노동 정책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과하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에 따른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취지이기에 원청으로서 책임을 함께하는 식으로 재계가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더해집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노란봉투법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속에서 하청 노동자 등의 노동권이 거의 행사되지 못하는 현실을 바로잡자는 취지와, 적대적 노사관계 속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손배소를 지나치게 이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취지의 입법”이라며 “현실에서 노동 보호 측면이 강화된 것으로 재계가 부담을 느낀다 하더라도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들을 바로잡는 측면으로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서 적응을 해 나가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노동 정책이 변화할 때마다 재계는 늘 지나친 걱정을 하고 있는데, 지나고 나면 다 새로운 질서에 적응한다”며 “이런 질서가 만들어지고 노사간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좀 더 성숙한 노사관계로 변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도 “그동안 하청 노동자들은 아무런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노사관계를 풀어 갈 수 있는 수단이 없어 극단적인 갈등이 생겨났다”며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실질적 사용자가 책임 있게 교섭에 임하도록 하는 사안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새로운 입법적 개입인 만큼 기존 판례와 충돌해 일정 부분 진통이 있을 수 있다”면서 “그런 혼란은 제도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사회가 슬기롭게 감당해 나가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배덕훈·박혜정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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