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에서 벗어난, 자기보다 네 배나 큰 뻐꾸기 새끼에게 작은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가 먹이를 주고 있다.
“뻐꾹, 뻐꾹, 뻐뻐꾹”
장맛비가 잠시 소강 상태로 빠지고 찜통 더위가 찾아온 7월. 뻐꾸기(European Cuckoo) 수컷의 울음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옵니다.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에게 위탁한 자기 새끼에게 부모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랍니다. 예로부터 배은망덕한 사람을 일러 '뻐꾸기 새끼마냥 얌체 같은 놈'이라고 종종 표현했지요. 일반적으로 새들은 건강한 2세를 위해 힘 센 수컷을 고르지요. 또 자신이 낳은 알 중에서도 큰 알부터 먼저 품고, 목구멍을 크게 벌리고 요란스럽게 머리를 흔들어대는 새끼부터 먹이를 준다고 해요.
뻐꾸기를 비롯한 두견이과 새들은 이러한 자연의 생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번식하는 전략을 이어오고 있어요. 스스로 둥지를 짓지 않아요.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뱁새, 개개비, 딱새, 멧새, 산솔새 등의 둥지를 호사탐탐 엿보다가 이들이 둥지에 알을 낳으면 어미가 없는 틈을 타서 잽싸게 알을 하나 버리고 자기 알을 낳아 놓아둔답니다. 뻐꾸기의 알은 부화 기간이 12일 정도로 14일 정도인 연작류보다 먼저 부화해요. 대리모의 품 안에서 먼저 태어난 뻐꾸기 새끼는 다른 알들을 본능적으로 둥지 밖으로 밀쳐버리고 대리모를 독차지해요. 뱁새는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뻐꾸기 새끼를 자신의 새끼로 착각해 혼신을 다해 먹이를 잡아다 주지만, 정작 그놈은 새끼를 모두 죽인 자식의 원수인 셈이죠.
이런 뻐꾸기의 얌체 짓을 사진으로 두 번 기록했어요. 2003년 7월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지나 한강변에 위치한 농가 앞 잡풀 속에서 뱁새 둥지를 하나 찾았어요. 둥지 속에는 푸른빛의 뱁새 알이 4개 있었고, 뱁새의 암컷이 이들을 품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곳에 이상한 놈이 끼어 있었어요. 눈도 뜨지 못하고 깃털도 나지 않은 검붉은 빛의 뻐꾸기 새끼가 뱁새의 품 안에서 벗어나 등을 이용해 뱁새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어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더니 드디어 알 1개를 둥지 밖으로 떨쳐냈어요. 맨땅에 떨어진 뱁새 알은 그대로 깨져버렸는데, 새의 형태를 이제 막 갖춘 뱁새 새끼에게 곧장 개미 떼들이 모여들었어요.
멍청한 뱁새는 뻐꾸기 새끼의 대담한 행동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고, 수컷이 어느새 날아와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까지 건네주었어요. 뻐꾸기 새끼는 한두 시간 간격으로 나머지 알들을 모두 밀쳐버렸어요. 아까운 생명들이 피어나지도 못하고 죽음으로 끝나는 현장을 보며 뻐꾸기의 얌체 짓을 제지하고 싶었지만, 이 또한 자연의 섭리인지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지금도 의문인 것은 뱁새 어미가 왜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첫 번식을 맞은 젊은 어미일수록 뻐꾸기에게 당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한 번 속아본 적이 있는 어미 새들은 이후에 적절히 방어를 한다고 하니, 이렇게 맥없이 속고 있는 뱁새 부부는 아마도 초짜겠지요.
뱁새 알보다 이틀 먼저 부화한 뻐꾸기 새끼가 먹이를 달라며 부리를 벌리고 있다. 먹이를 먹고 힘을 비축한 뻐꾸기 새끼는 본능적으로 다른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2004년 7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예봉산 자락에서 또 다른 뻐꾸기의 탁란 과정을 지켜봤어요. 한 가정집 텃밭에 위치한 뱁새 둥지에서 먼저 깨어난 뻐꾸기 새끼가 뱁새 알을 밀쳐대는 장면을 카메라로 기록했지요. 일반적으로 뻐꾸기 새끼는 부화하고 48시간 안에 다른 알들을 모두 둥지 밖으로 밀쳐버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녀석은 뱁새 알을 제거하는 데 3일이 걸렸어요.
저는 그 찰나의 순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지키며 현장에서 3일을 지켜봤어요. 일주일 뒤 다시 그곳을 찾았는데 둥지는 텅 비어 있었어요. 하지만 숲 근처에서 뻐꾸기 새끼에게 혼신을 다해 풀벌레를 잡아다 주는 뱁새 부부를 만났죠. 뻐꾸기 새끼가 자신보다 4배 정도나 크게 자랐지만, 뱁새 부부는 먹이 공급에 여념이 없었어요. 이렇게 덩치가 거대하고, 더구나 자기 새끼도 아닌 녀석을 먹여 살리려고 힘을 쏟는 뱁새 부부의 헌신을 배은망덕한 뻐꾸기 새끼가 조금이라도 알까요?
“뻐꾹, 뻐꾹, 뻐뻐꾹.” 뻐꾸기 어미가 근처에 날아와 진짜 어미는 나라고 연신 울어댑니다. 정겹게 들렸던 뻐꾸기 울음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귀에 거슬립니다. 대를 이어 번성하려는 생물의 종 존속 전략은 이처럼 다양하지만, 남을 해치고 뻔뻔하게 자식 부양까지 전가하는 두견이과 새들의 번식 전략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삶의 형태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뻐꾸기 얌체 짓 하지 말라’는 자연의 가르침은 얻었습니다.
글,사진= 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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