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물 탐사 및 채굴로 주목받고 있는 태평양 한복판 심해저지대인 클라리온-클리퍼튼 지대. (이미지=위키피디아)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지구의 마지막 남은 광물자원 보고로 주목받는 수심 200m 이상의 심해저(deep seabed)가 이제 인류의 새로운 채굴 전선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태평양 심해저 곳곳에서 망간 단괴와 같은 희귀 금속을 채취하려는 각국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산업적 열기에 가려져 심해 소음 공해가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잠재적 피해는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해양오염 보고서(The Marine Pollution Bulletin)> 발표된 논문 ‘태평양 클라리온-클리퍼튼 지대(Clarion-Clipperton Zone, 이하 CCZ)에서의 심해 채굴 소음이 광범위한 해양생물에 미칠 영향’에 따르면, 태평양의 클라리온 해령(海嶺)과 클리퍼튼 해령 사이의 광대한 해저 지대인 일명 클라리온-클리퍼튼 지대를 대상으로 2800건 이상의 생태조사를 종합 분석한 결과, 이 지역에 서식하는 대부분의 동물종이 소리에 민감한 생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연구진은 저주파 음파, 진동, 기계적 소음이 이 생물군에 영향을 주어 먹이 활동, 이동 패턴, 심지어 번식에까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해저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심해 소음
해양생물은 대부분 소리를 통해 환경을 인지하고 상호작용합니다. 특히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심해에서는 소리가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자 포식자 탐지 도구입니다. 하지만 심해 채굴에 사용되는 굴착 기계, 파쇄 장비, 선박 엔진 등의 연속적인 저주파 소음은 이 정교한 청각 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호주 멜버른에 있는 라트로브(La Trobe) 대학의 해양 생물음향(bioacoustics) 전문가이자 연구 공동 저자인 루실 샤퓌 박사는 “해양생물들은 의사소통, 짝 찾기, 포식자 피하기, 먹이 찾기 등 모든 것에 소리를 사용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CCZ에는 많은 저서성 무척추동물, 심해 물고기, 플랑크톤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포식 회피, 짝짓기 신호, 군집 형성을 위해 소리에 의존합니다. 소음이 이들의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붕괴시키면, 결국 먹이사슬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경고입니다.
샤퓌 박사는 “만약 우리가 이 체계에 소음을 추가하게 되면, 이러한 기능들은 가려지거나 방해를 받게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태평양 연안의 삶을 뒤흔들다
이러한 생태계 변화는 단지 심해 생물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CCZ의 생태계는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등 태평양 연안국의 수산 자원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수 세기 동안 바다에 의존해 살아왔으며, 수산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지역 문화와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의 심해 채굴이 해양생물의 행동과 번식 주기를 망가뜨리면, 수십년 후 수산업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심해 생물들이 겪는 생리적 스트레스는 상위 포식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며, 결과적으로 상업적 어획 대상 어종의 개체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식량 불안, 어민 생계 위협, 연안 공동체 붕괴로 연결될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광물 탐사 및 채굴로 주목받고 있는 태평양 한복판 심해저지대인 클라리온-클리퍼튼 지대(이미지=위키피디아)
연구자들의 경고와 투명성 요구
이 같은 생태학적 위협 앞에서 연구자들이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업계의 투명성 부족입니다. 심해 채굴은 아직 상업적으로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탐사권 확보와 시험 굴착은 이미 여러 기업이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사용하는 장비의 소음 수준, 해양 생물에 미치는 구체적 영향, 저감 조치 등의 정보는 대부분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연구진의 일원인 텍사스 A&M 대학의 트래비스 워시번 교수는 '사이디브넷(SciDev.Net)'과의 인터뷰에서 “실제 채굴 활동에서 발생하는 소음 수준이 얼마인지에 대한 공개된 데이터는 전혀 없습니다. 모두 독점 정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해저 채굴기업들의 이런 태도는 지구적 생태계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또한 국제해저기구(International Seabed Authority, ISA)가 보다 강력한 소음 규제 기준을 수립하고, 채굴 허가 조건에 생태계 모니터링 및 공개보고 의무 조항을 삽입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심해 자원의 상업적 채굴은 많은 국가에서 경제 발전을 위한 자원 확보의 기회로 여겨집니다. 우리나라도 ISA로부터 CCZ와 같은 공해 심해저에 대해 3건의 다중금속 단괴(polymetallic nodules) 탐사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또한 해양수산부는 “심해저 활동 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니켈, 코발트, 구리 등 핵심 광물 확보, 특히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심해 채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심해 채굴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미국 및 국제 수역에서 심해 채굴 허가 절차를 신속화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술적 해결 없이 채굴이 허용될 경우, 그 대가는 너무 클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본격적인 심해 채굴을 시작하기 전에 소음 저감 기술 개발, 생태계 영향 평가 의무화, 고위험 지역의 채굴 금지 설정,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가능성에 기반한 국제 협력 체계 구축이 요구됩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21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19차 총회에서 채택된 IUCN 결의안 122호에서 “심해 생태계의 과학적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며, 이 상태에서의 무분별한 채굴은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히며, 모라토리엄, 즉 잠정적 심해 채굴 금지를 권고한 바 있습니다.
침묵의 경고
인류의 탐욕은 이제 심해저까지 손을 뻗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바다의 침묵은 생명이 소멸한 침묵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세계의 소리 없는 언어입니다. 심해 소음 문제는 일부 과학자들의 우려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선택한 산업과 문명의 발전 윤리를 되묻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비롯해 수많은 생물들이 서식하는 심해는 이미 침묵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린피스 활동가가 심해 채굴에 항의하는 모습. 스페인어로 “해저 광업 중지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그린피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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