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와 뇌의 신경 세포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결되어 있다. 이 신경 세포들은 음식 냄새에 의해 활성화되어 포만감을 유발한다. (이미지=ChatGPT/Max Plank Institute)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명절에 기름 냄새를 풍기며 전을 부친 기억이 있습니까?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난 가정주부들은 입맛이 없다고 합니다. 다른 가족들은 식탁에서 열심히 식사하고 있지만 막상 조리를 한 사람은 뒷전으로 물러나 있습니다. 이미 음식에 질린 걸까요.
식사를 하기 전에 맡은 음식 냄새가 입안 가득 감도는 맛보다 더 먼저 마음과 생리 반응을 준비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왔습니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냄새나 다른 음식 관련 자극은 침이나 소화액 분비를 자극합니다. 이런 신체 반응을 ‘뇌상(腦狀) 반사작용(cephalic phase reflex)’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도록 정교한 신경회로가 단지 냄새만으로 우리 뇌에 포만감을 예측하게끔 ‘예측적 포만(anticipatory satiety)’ 역할을 한다는 최신 연구가 나왔습니다. 이는 식습관과 비만 관리에 있어 후각의 역할을 입증하는 새로운 증거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뇌 스캔으로 밝혀낸 음식 냄새의 신경 반응
독일 쾰른에 있는 막스 플랑크 대사연구소를 중심으로, 영국 프란시스 크릭 연구소, 본대학, 포츠담대학 등이 참여한 이 연구팀은 실험 쥐를 통해 후각-뇌 회로의 작동 원리를 규명한 “음식 냄새에 반응하는 후각 회로가 식사 전 포만감을 유발한다(A food-sensitive olfactory circuit drives anticipatory satiety)”라는 논문을 <네이처 메타볼리즘(Nature Metabolism)>에 발표했습니다.
먼저, 단식 상태의 실험용 생쥐에게 음식을 보여주거나 냄새만 맡게 한 후, 뇌 전체의 활성도를 양전자방출 단층 촬영법(PET)으로 촬영하고 신경세포의 활성 상태를 시각화하는 FOS 면역 염색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후각 구역뿐 아니라 뇌의 중격(medial septum)이 특별히 활성화되었고, 이곳의 글루타메이트 수용 뉴런(glutamate-receptive neurons)이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음식 냄새가 감지되자 글루타메이트 수용 뉴런은 순간적으로 활성화되었고, 식사를 시작하면 이 뉴런들의 활동은 억제되는 이상적(二相的) 반응(biphasic response)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냄새 자극만으로도 식사량이 줄었습니다. 빛으로 살아 있는 생물의 특정 신경세포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광유전학(optogenetic) 실험에서 후각구(olfactory bulb)에서 중격 부위까지 이어진 회로를 활성화하자 다이어트 전 실험쥐가 실제 식사 없이도 포만감을 느끼며 식사량이 24% 감소했습니다.
반면 비만 상태의 쥐에서는 이 회로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비만이 후각계 기능 전반에 장애를 유발한다는 선행 연구에 주목하며, 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신경세포도 비만 상태에서 기능이 저하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습니다.
진화적·생리적 의미
이 회로는 생쥐가 야생에서 포식자의 공격을 피하는 생존 전략과 연결됩니다. 운동성과 스트레스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냄새→예측 포만→짧은 식사’ 전략을 지원하는 신경회로인 셈입니다. 또한 예측 포만은 소화기계가 미리 준비되어 포만감을 빠르게 유도해 혈당 급상승이나 지방 축적을 피하는 생리적 역할도 합니다. 이번 연구논문의 제1 저자인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야니스 불크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야생의 생쥐는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식사를 가능한 빠르게 끝냅니다. 이 메커니즘은 그런 생존 전략을 돕는 것입니다.” 즉, 후각 기반의 예측 포만 회로는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진화적 기능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이 반응은 음식 냄새에만 특이적으로 나타났고, 다른 일반적인 냄새에는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동물들의 먹이 활동과 관련된 신경 반응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비만 치료의 새로운 열쇠, 그리고 남은 과제
비만 쥐에서 해당 회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회로를 회복하거나 강화하면 비만 완화 전략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가설을 가능케 합니다. 인간도 후각 회로가 유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냄새 기반 비만 치료법, 식전 디퓨저 냄새 적용, 후각 자극 약물 개발 등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후각과 포만감에 대한 연구는 실험쥐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 데이터는 부족합니다. 또한 후각과 포만감의 회로에 들어 있는 뇌의 중격 부위는 학습과 운동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복합 영역이기 때문에 기능별로 분리해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정상 유지식(Normal Chow Diet)과 고지방식(High-Fat Diet)이라는 두 가지 특정 음식의 냄새만 사용했기 때문에 냄새의 성향에 따라 뇌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연구 과제입니다.
비만 및 식이장애 치료에 대한 응용 가능성
막스 플랑크 연구소 홍보팀은 “냄새 하나만으로도 식사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감각 연구와 영양학 모두에 혁명적 발견”이라며, 앞으로 비만·식이장애 치료에 대한 응용 가능성을 강조했습니다. 뉴로사이언스 뉴스(Neuroscience News)는 “이 회로는 포만감에 이를 때까지 우리가 무엇을 더 먹을지 결정하게 만드는 최초의 ‘중추적 회로’”라고 평가했으며, “‘비만한 쥐의 뇌’에서는 이 회로가 무뎌진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 연구는 냄새 자극 하나만으로도 뇌가 식사 준비와 포만을 주도할 수 있는 경로를 규명했으며, 후각을 통해 비만이라는 복잡한 생리와 행동 문제를 풀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냄새 조절 기반 비만 치료제 개발, 식사 전 후각 자극 프로토콜 구성, 맞춤형 포만 자극 전략 연구 등 후속 연구의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이는 과학적 기반 위에서 감각 중심의 식이 조절이 실현되는 시대의 도래를 알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냄새를 감지하여 뇌의 중격(medial septum)으로 연결하는 후각구(olfactory bulb)를 보여주는 해부도. (이미지=위키피디아)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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