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염식이 장내미생물–프로피오네이트 축이 교모세포종 진행을 유도하는 개념도. 고염식으로 인한 장내미생물 변화로 야기된 프로피오네이트 축적은 교모세포종의 침습성을 증가시킨다.(이미지=KAIST)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뇌종양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최근 발표된 한 생의학 논문이 전 세계 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제목은 다소 생소하지만 의미심장합니다.
“짠 음식으로 인한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프로피오네이트를 통해 TGF-β를 활성화하여 교모세포종을 촉진한다(Gut dysbiosis from high-salt diet promotes glioma via propionate-mediated TGF-β activation)”라는 이 연구는, 식습관이 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자 수준에서 밝혀낸 세계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핵심은 짠 음식이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그 결과로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glioblastoma)’의 진행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내 미생물과 뇌암, 어떻게 연결될까?
KAIST 생명과학과 이흥규 교수 연구팀은 실험용 생쥐에게 고염식을 일정 기간 공급한 뒤, 장내 미생물의 변화와 뇌종양의 진행 과정을 정밀하게 분석했습니다.
연구 결과, 고염식을 섭취한 생쥐에서는 장내 유익균이 급격히 감소했으며, 식이섬유를 발효할 때 생성되는 ‘프로피오네이트(propionate)’라는 물질의 농도가 상승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로 이 프로피오네이트입니다. 평소에는 장내 환경에 이로운 짧은사슬지방산(SCFA)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연구에 따르면 뇌종양 세포 내에서 TGF-β(Transforming Growth Factor-beta) 신호 전달 경로를 과도하게 자극해 교모세포종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TGF-β 경로는 암세포의 성장, 전이, 면역 회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호 체계입니다. 이 경로가 프로피오네이트로 인해 활성화되면 암세포가 더 빠르게 자라고 면역 반응을 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짠 음식과 암,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관계로
물론 아직 이 메커니즘이 인간에게도 똑같이 작용한다는 직접적인 임상 증거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짠 음식이 건강에 해롭다”는 통념을 분자생물학적으로 입증한 첫 사례로, 뇌 건강과 식단의 연관성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연구팀은 고염식이 장내 미생물 구성을 바꾸고, 이로 인해 뇌의 면역 환경이 억제되며, 항암 면역 반응까지 둔화되는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 기존 치료법에 대한 저항성까지 키울 수 있는 우려를 제기합니다.
마이크로바이옴과 식단, 암 예방의 열쇠
이번 연구는 ‘장내 미생물 생태계(microbiome)’와 식단이 암 발생 및 악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과학적 흐름의 일환으로 해석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장내 미생물은 당뇨병, 비만, 자가면역질환뿐만 아니라 암과의 연관성까지 주목받으며, 의학계의 핵심 연구 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흥규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고염식이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그 변화가 생성하는 대사산물이 뇌종양을 악화시킬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며, “향후 뇌종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식이 조절 연구 및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 전략 개발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연구 결과는 세계적 생의학 학술지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 5월 22일 자에 게재되었습니다.
짠 음식의 유혹, 질병의 씨앗이 될 수도
이번 연구는 인간 대상 임상 실험이 아닌 동물 실험에 기반한 전임상 연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접하는 식습관이 뇌종양 같은 심각한 질환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중요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나트륨 섭취 권장량을 2,000mg 이하, 소금 약 5g 이하로 제한하고 있으며, 많은 국가들이 ‘저염 식단’을 국민 건강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 발효식품, 생채소 등을 섭취해 장내 유익균을 늘리는 습관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짭짤한 음식은 입맛을 당기는 유혹이지만, 몸속 깊은 곳에서 질병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그 위험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며, 식습관 개선이 뇌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생명과학과 이흥규교수(좌), 김현진 박사(우), 김채원 박사(모니터화면)(사진=KAIST)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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