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트륨-공기 연료전지 실험을 수행하기 위해 전극과 이온전도성 세라믹 막으로 개조된 H-셀. (사진=Gretchen Ertl, MIT)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연구진은 최근 에너지 전문 학술지 <쥴(Joule)>에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논문 제목은 “고에너지 밀도 및 저비용 전력 생산을 위한 나트륨-공기 연료전지(Sodium-air fuel cell for high energy density and low-cost electric power)”로, 이는 미래 전기 항공기와 대형 운송 수단의 탈탄소화를 위한 강력한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나트륨-공기 연료전지의 원리
나트륨-공기 연료전지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저장하고 생성합니다. 이 연료전지는 액체 상태의 금속 나트륨(Na)을 연료로 사용하며, 외부 공기 중의 산소(O₂)와 전기화학적으로 반응하여 전력을 생산합니다.
전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나트륨이 들어 있는 연료극(anode)과 공기 중의 산소를 받아들이는 공기극(cathode), 그리고 이 두 전극 사이를 연결하는 고체 세라믹 전해질(전도성 막)입니다. 전해질은 나트륨 이온만을 통과시키는 특수한 물질로, 열과 전기적 안정성이 뛰어납니다.
금속 나트륨이 산화되면서 나트륨 이온을 방출하고, 이 이온이 고체 전해질을 통과하여 공기극으로 이동합니다. 공기극에서는 산소 분자가 환원되어 나트륨 이온과 결합, 산화나트륨(Na₂O)을 생성하며 이 과정에서 전류가 흐르게 됩니다.
실험 결과, 이 연료전지는 무게당 1700Wh의 에너지 밀도를 나타냈으며, 전체 시스템을 고려해도 약 1000Wh/kg에 달하는 에너지 밀도를 구현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이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3배 이상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현재 전기 항공기 실용화를 위해 요구되는 최소 에너지 밀도는 약 900~1000Wh/kg이기 때문에, 이 연료전지는 전기 비행기의 현실적인 동력원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에너지 밀도에 경제성도 탁월
이번 기술의 핵심은 단순한 고에너지 밀도뿐 아니라 경제성과 원료의 접근성도 높습니다. 기존의 고성능 배터리 기술은 대부분 리튬, 코발트, 니켈 등 희소금속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격 변동이 심하고, 환경적·윤리적 문제를 수반하기도 합니다.
반면 나트륨은 바닷물과 지각에 풍부하게 존재하며, 추출 비용도 리튬보다 낮습니다. 따라서 나트륨 기반 연료전지는 장기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으며, 대규모 전력 저장 장치나 운송용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연료전지 방식은 또한 충전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배터리와 달리 연료전지는 연료(이 경우 액체 나트륨)를 교체하거나 보충하면 즉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해집니다. 이 특성은 항공기나 장거리 운송 수단에 매우 적합합니다.
전기 항공기 시대의 서막
MIT 연구진은 이 기술이 특히 전기 항공기 분야에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기존 배터리로는 장거리 항공 운항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하기 어렵지만, 이 연료전지는 그 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항공 분야에서 전체 탄소 배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지역 항공편(편도 800km 이하)에 이 연료전지를 적용할 경우, 대규모의 탄소 저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드론, 전기 선박, 무인 탐사 차량 등 다양한 무인 및 유인 운송 수단에도 활용이 가능합니다.
이번 연구를 이끈 MIT 재료과학공학과 옛밍 치앙(Yet-Ming Chiang) 교수는 “우리는 이 기술이 항공 모빌리티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가 되기를 바란다”며 “이런 발상은 ‘미친 아이디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진정한 혁신은 종종 상식의 경계를 넘어서는 데서 출발한다”고 밝혔습니다.
탄소 포집과 해양 산성화 완화 부대 효과
놀라운 점은 이 연료전지가 단순히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수준을 넘어, 사용 과정에서 CO₂를 흡수한다는 점입니다. 나트륨과 산소의 반응 결과 생성되는 산화나트륨(Na₂O)은 수분과 결합하여 수산화나트륨(NaOH)을 만들고, 이것이 대기 중의 CO₂와 반응하여 탄산나트륨(Na₂CO₃) 또는 중탄산나트륨(NaHCO₃)을 생성합니다.
이 반응은 자연적으로 일어나며, 별도의 장비나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산화탄소를 연료전지 내부 혹은 주변에서 포집하여 무해한 고체 물질로 변환하는 방식은 실질적인 탄소 중립, 나아가 탄소 네거티브(마이너스 배출)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나아가 생성된 중탄산나트륨이 해양으로 흘러 들어갈 경우, 산성화를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저장 기술의 패러다임 전환
MIT 연구진은 이번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 ‘프로펠 에어로(Propel Aero)’를 설립하여 상용화를 본격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목표는 대형 드론에 탑재할 수 있는 벽돌 크기의 연료전지를 제작하는 것입니다. 이 연료전지는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이미 20회 이상의 연속 작동에 성공했으며, 향후 수백 회의 작동과 연료 충전 사이클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특히 연료전지를 모듈화하여 다수의 장치에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체 전해질의 내열성과 수명을 향상시키기 위한 후속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기술의 완성도와 안전성, 수명 주기 등, 아직 상용화 단계에서 검증되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이번 연구는 에너지 저장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양한 운송 수단에 적용 가능한 나트륨-공기 전지 시스템의 원리와 탄소 포집 및 해양 탈산성화 기능: 액체 나트륨 전극과 고체 전해질을 활용해 공기 중 산소 및 수분과 반응하여 수산화나트륨를 생성하고, 이는 산소와 반응하여 중탄산나트륨로 전환됨으로써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해양 산성화를 완화하는 것을 보여주는 일러스트. (사진: Joule)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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