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머릿속 기억의 흔적으로 진실 찾기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정치인 발언의 진실성 논쟁’ 과학으로 규명 가능?
2025-05-23 09:28:46 2025-05-23 15:15:19
챗GPT가 만든 '뇌 전기진동 신호 분석' 이미지.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정치인들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도는 낮습니다. 세계적인 여론조사 기관인 입소스(Ipsos)가 지난해 5월부터 7월까지 32개국 2만35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치인을 신뢰한다는 응답자는 평균 15%로 21개 직업군 가운데 최하위로 나타났습니다. 국가별로 보면 한국의 경우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9%, 불신도는 64%로 32개국 가운데 29위를 기록했습니다.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많이 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21대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입니다. 각 정당과 후보자들은 서로를 향해 거짓말을 한다고 맹비난을 퍼붓고 있지만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가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전기 신호로 파악하는 ‘경험적 지식’
 
말로 진실을 밝히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사람의 머릿속에 담긴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knowledge)’—즉, 개인이 실제로 경험하거나 기억하는 사실—을 물리적으로 밝혀내려는 기술 개발을 시도해 왔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기술이 인도의 임상 심리학자 참파디 라만 무쿤단(Champadi Raman Mukundan)이 개발한 ‘뇌 전기진동 신호 분석’(Brain Electrical Oscillations Signature, BEOS)입니다.
 
BEOS는 피의자의 뇌에서 미세한 전기 신호 변화를 분석해, 그 사람이 특정 사건을 실제로 경험했는지 판별하려 시도합니다. 기존의 거짓말 탐지기와 차별점은 뇌파에 직접 주목한다는 점입니다. 또 나르코분석(Narcoanalysis)처럼 진정제 투여로 피의자 진술의 의도적 억제와 회피를 막아 진술을 유도하는 방식과도 다릅니다. BEOS는 비침습적 방법으로 뇌의 전기적 반응을 측정해 기억의 흔적을 찾아내려는 기술입니다.
 
BEOS, 기억의 물리적 흔적을 탐색
 
BEOS 기술의 뿌리는 1980년대 미국 신경과학자 로렌스 파웰이 개발한 ‘브레인 핑거프린팅(brain fingerprinting)’에 있습니다. 파웰은 특정 자극(예: 범죄 현장에 있었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단어나 이미지)이 제시될 때 뇌파(EEG)에서 나타나는 P300 신호에 주목했습니다. 이는 뇌가 새로운 정보를 인지할 때 나타나는 특정한 전기 반응입니다. 범죄자가 자신이 범행과 관련된 정보를 인지하면, 뇌파에서 이 P300 신호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무쿤단과 그가 설립한 회사 액소넷(Axxonet)은 P300뿐 아니라 다양한 뇌파 신호를 통합 분석해 단순한 정보 인지를 넘어 실제 경험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 검사 과정은 피의자가 EEG 헤드셋을 착용한 상태에서 법의학 전문가가 준비한 사건 관련 문장인 ‘프로브(probe)’를 듣고, 뇌파 분석 소프트웨어가 각 문장에 대한 반응을 측정해 특정 기억이 활성화되는지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현장 활용과 인도의 적용 사례
 
BEOS는 2000년대 초부터 인도에서 일부 경찰 수사에 활용되어 범죄자 선별이나 보석 결정 등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나렌드라 모디 현 총리가 구자라트주 총리 시절 설립한 인도 국립법과학대학(NFSU)과 여러 주립 법과학 연구소에서 700건 이상의 중범죄 피의자에게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BEOS 지지자들은 이 기술이 기존의 신체적 고문이나 비과학적 심문보다 훨씬 인도적이고 객관적인 정보 수집 수단이라고 주장합니다. NFSU 학장 아샤 스리바스타바는 “경찰과 피의자 간 신뢰를 구축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BEOS가 법정에서 정식 증거로 채택되는 사례는 드뭅니다. 2010년 이후 인도 법원은 BEOS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법적 증거능력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우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는 판결문에 BEOS 검사 결과가 언급되거나 수사에 반영되는 사례가 꾸준히 존재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보여줍니다.
 
과학적 근거는 아직 불완전
 
액소넷이 발표한 BEOS 관련 연구들은 제한적이며, 권위 있는 동료 검증(peer review) 학술지에 발표된 적도 없습니다.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따르면 인도공과대학교(IIT) 칸푸르의 인지과학자 나라야난 스리니바산은 “실제 사건에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습니다. 미국 밴더빌트대학교 법학 및 생물과학자 오언 존스 교수도 “과학적으로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BEOS를 법정에 도입하는 것은 사법 정의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BEOS의 알고리즘과 데이터 처리 방식이 공개되지 않아 제3자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에밀리 머피 교수는 “완전히 폐쇄된 시스템이라 외부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컬럼비아대 신경과학자 라파엘 유스테 교수와 스탠퍼드대 심리학자 앤서니 와그너 교수는 기억의 복잡성과 가변성, 그리고 진짜 경험과 후천적 기억의 구분이 어렵다는 점을 들어 BEOS의 이론적 근거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머릿속, 가장 사적인 영역
 
인간의 신체가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뇌는 가장 사적인 영역입니다. 타인이 개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정신적 자유권과 사생활 침해의 극단적 형태일 수 있습니다. 또한 피의자라고 해도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BEOS 검사를 강제로 시행하는 것은 이런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큽니다. 2010년 이후 인도 법원은 BEOS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BEOS 결과의 법적 증거능력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합니다.
 
물론,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을 검증하는 데 BEOS를 강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진실은 과학으로 규명 어려운 사회적 구성물
 
진실은 과학과 기술로 규명할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셸 푸코가 말했듯이 진실은 ‘어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권력 구조 속에서 구성됩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내뱉는 말의 ‘진실’은 권력과 이해관계에 깊이 영향을 받습니다.
 
결국 정치인의 말 속에 담긴 거짓과 진실은 시민들의 건전한 상식, 미디어 문해력(media literacy), 그리고 비판적 사고에 의해 가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도 기업 액소넷의 '뇌 전기진동 신호 분석' 홍보 이미지. (사진=Axxonet 홈페이지 캡처)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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