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게임, 실패를 통해 배우는 학습의 장
2025-05-19 10:07:10 2025-05-19 14:40:52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청소년의 모습. (사진=게티이미지)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과거의 비디오 게임은 한때 '중독'과 '시간 낭비'라는 낙인 아래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러나 최근 심리학과 교육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게임의 긍정적 효과를 조명하면서 게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는 게임의 구조는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 담지 못했던 학습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실패를 거듭하며 성장하는 게임의 독특한 환경
 
게임의 핵심은 도전과 실패, 그리고 반복입니다. 대부분의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도록 유도합니다. 플레이어는 처음엔 미숙하지만 반복을 통해 점차 능숙해지며 게임 속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합니다. 
 
이런 구조는 기존 교실 수업이 제공하기 어려운 자기 주도 학습 환경을 제공합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심리언어학 교수인 제임스 폴 지(James Paul Gee)는 이를 두고 "좋은 게임은 훌륭한 교사보다 낫다"고 평가합니다. 그는 게임이 제공하는 즉각적인 피드백, 점진적 난이도 조절, 자율적 탐색이 학습을 유도하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게임은 플레이어가 여러 번 실패하고 전략을 조정하며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단순한 조작 능력을 넘어서 인지 기능, 집중력, 인내심, 창의성 등을 자연스럽게 훈련하게 됩니다. 
 
심리학이 밝힌 게임의 힘: 회복탄력성과 동기 부여
 
심리학자들은 게임이 실패를 '피해 없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현실에서의 실패는 자존감 손상이나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게임에서는 실패를 일상적인 요소로 간주하며, 즉각적인 재도전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사용자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키우는 데 기여합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았던 2013년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실시한 실험에서도 스스로를 게이머라고 밝힌 학생들이 더 어려운 문제에 더 오랜 시간 도전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게임이 사용자의 내적 동기를 자극하고, 실패 앞에서도 끈기 있게 도전하게 만드는 심리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닌텐도 스위치와 같은 콘솔 게임의 폭발적인 수요와 관련 연구들은 게임이 고립된 상황에서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학교 교실로 진출한 교육의 게임화(Gamification)
 
게임의 구조를 교육에 도입하려는 시도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학교 수업에 점수 시스템,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임무나 목표를 의미하는 퀘스트(Quest), 레벨업 같은 요소를 도입하는 게임화(Gamification)는 학습자들의 몰입도를 높이고, 자기 주도적 문제 해결을 유도합니다. 실제로 수학 문제, 과학 실험, 역사 수업 등에서 이러한 방식이 도입돼 디지털 세대 학생들에게 높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게임화된 수업은 학생이 직접 목표를 설정하고 전략을 구성하며 실패를 통해 학습하는 사이클을 만듭니다. 이는 학생이 수동적인 지식 소비자에서 능동적인 지식 창조자로 전환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게임은 단지 도구가 아니라, 학습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게임에 대한 분별력 있는 접근 필요
 
물론 모든 게임이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폭력성, 중독성, 과도한 자극 등은 여전히 우려되는 요소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중독을 정신 건강 문제로 분류한 것처럼, 과도한 게임 몰입은 현실 회피, 수면 부족, 학업 저하 등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게임이 자극적이고 과격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 경우, 사용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게임을 교육적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선택과 사용 방식에 대한 분별력 있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놀이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목적과 교육적 설계가 병행될 때 게임은 진정한 학습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이때 부모와 교사, 교육자의 역할은 단순히 게임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어떤 게임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함께 탐색하고 지도하는 것입니다. 
 
소셜미디어 중독, 게임 중독보다 해악 커
 
종종 게임과 소셜미디어는 같은 범주의 '디지털 중독'으로 묶이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 둘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 2021년 '프런티어스 인 사이키애트리(Frontiers in Psychiatry)'에 발표된 연구는 소셜미디어 중독이 게임 중독보다 정신 건강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했습니다. 특히 낮은 자존감, 사회적 고립, 우울감 등은 소셜미디어 사용자에게서 더 빈번하게 나타났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외모 비교, 사이버 괴롭힘, 팔로워 수에 대한 집착 등 외적 평가 중심의 환경을 만들며, 정서적 불안정성을 증가시킵니다. 반면 게임은 협업과 경쟁, 목표 지향적인 구조를 통해 오히려 사회적 유대감과 성취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게임도 과도하면 해롭지만,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긍정적 효과를 제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교육과 심리적 관점에서 재해석될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 도전과 성취의 필수 조건이 될 수도
 
게임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닙니다.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전환하고, 몰입을 통해 인지적 성장을 자극하며, 심리적 안정까지 도모할 수 있는 다기능적 도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 세대에게 게임은 친숙한 언어이자, 자신의 세계를 탐색하고 구축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게임을 통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 그리고 타인과의 협력을 배우게 된다면 그것은 교과서 그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될 것입니다. 게임이 교육과 만날 때, 실패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도전과 성취의 필수 조건으로 환영받을 것입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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