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비타민D가 세포 노화 늦출 수 있다"
하버드 의대·조지아 의대 대규모 연구에서 텔로미어 단축 지연 효과 나타나
2025-05-29 09:04:48 2025-05-29 15:10:49
비타민D가 풍부한 식품과 보충제. (사진=게티이미지)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비타민D는 수십년간 ‘햇빛 비타민’이라는 별명과 함께 건강 보조제 시장의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아왔습니다. 뼈 건강은 물론 심혈관 질환, 암,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이어지면서, 비타민D는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포장되기도 했습니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과 조지아 의과대학 연구진이 주도한 대규모 임상시험 VITAL(VITamin D and OmegA-3 TriaL)의 후속 분석은, 비타민D가 세포 수준에서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하며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핵심은 비타민D가 세포의 분화에 관련된 ‘텔로미어’라는 유전적 구조물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세포 노화의 시계, 텔로미어
 
세포는 무한히 분열할 수 없습니다. 인체 세포는 약 50회 정도의 분열 이후 복제를 멈추게 됩니다. 이 과정의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텔로미어(telomere)입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말단을 보호하는 반복적인 DNA 서열로,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짧아집니다. 텔로미어가 지나치게 짧아지면 세포는 더 이상 복제되지 못하고 사멸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텔로미어는 ‘세포 노화의 생체지표(biomarker)’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텔로미어 길이가 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지나치게 긴 텔로미어는 돌연변이를 일으킨 세포의 수명을 연장시켜 오히려 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텔로미어 길이는 적절한 균형이 중요하다. 
 
비타민 D, 텔로미어 단축 늦출 수 있나?
 
VITAL 연구의 하위 분석은 비타민D 보충제가 텔로미어 단축을 늦추는 데 일정한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연구진은 약 2만6000명의 VITAL 참가자 중 하버드 의대 인근에 거주하는 1054명을 선별하여 4년간 세 차례 혈액을 채취하여 정량적 중합효소 연쇄반응(qPCR) 방식으로 텔로미어 길이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하루 2000 IU(50mg)의 비타민 D 보충제를 복용한 참가자 그룹은 위약(placebo)을 복용한 그룹보다 텔로미어 길이의 단축 정도가 작았습니다. 평균적으로 약 8700개의 염기쌍(bp)으로 시작한 텔로미어는 비타민D 복용 그룹에서 4년간 약 140bp 덜 짧아졌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조지아 의과대학 하이동 주(Haidong Zhu) 교수는 “비타민D 보충은 적어도 4년간 텔로미어 단축을 늦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한 DNA 서열의 보존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번 연구를 이끈 하버드 의대 조앤 맨슨(JoAnn Manson) 교수는 “비타민D가 염증 감소, 자가면역질환 예방, 암 사망률 감소와 같은 효과를 보인다는 기존의 임상 결과를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효과의 크기, 그리고 해석의 신중함
 
그러나 비타민D 복용군이 대조군에 비해 염색체의 염기쌍이 140bp의 덜 짧아졌다는 것이 실제로 건강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존스 홉킨스 대학교 텔로미어 센터 소장 메리 아르마니오스(Mary Armanios) 교수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과의 인터뷰에서 텔로미어 길이 변화는 정상인의 생리적 변이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텔로미어 길이가 노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극단적인 경우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정상 범위 내에서 변동하며, 이는 ‘젊음’이나 ‘노화’를 단정짓는 기준이 되기 어렵습니다.”
 
더불어 이번 연구에서 사용된 정량적 중합효소 연쇄반응(qPCR) 방식은 간편하고 대규모 분석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샘플 보관 기간이나 실험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아 재현성이 낮은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연구에 참여한 대부분의 참가자가 하버드 의대 인근 보스턴 지역에 거주하는 백인이라는 점에서 인종, 생활 방식, 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세포 노화의 메커니즘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종 집단을 포함한 후속 연구가 필요합니다. 
 
VITAL 연구가 던지는 의미: 만병통치약은 없다
 
VITAL 연구는 단순히 텔로미어 길이뿐만 아니라 비타민D와 오메가-3가 심혈관 질환, 암, 자가면역질환 등 주요 질병 예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대규모 임상시험입니다. 무작위 대조군 이중맹검(double-blind) 방식으로 설계된 이 연구는, 50세 이상 남성과 55세 이상 여성 총 2만5871명을 평균 5년 이상 추적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전체 인구에서는 심혈관 질환이나 전체 암 발생률에서 뚜렷한 예방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위 분석에서는 의미 있는 결과가 발견되었다. 오메가-3 보충제는 해산물 섭취가 적은 참가자에게서 심근경색 위험을 줄였고, 비타민D는 자가면역질환(autoimmune disease) 발생률을 약 22% 줄이는 효과를 보였습니다. 
 
이는 “영양 보충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유익하다”는 신념에 과학적 반론을 제기하며, 보충제 섭취가 특정 고위험군에게만 유의미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세포 노화에 맞서는 새로운 퍼즐 조각
 
VITAL 후속 분석은 비타민D가 텔로미어 단축을 늦추는 데 일정한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노화를 보다 미시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고, 예방적 개입을 모색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텔로미어의 길이는 비타민D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활 습관과 환경 요인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텔로미어 단축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되며, 명상이나 요가와 같은 심리적 안정 활동도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줄여 텔로미어 보호에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또한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식단, 예를 들어 신선한 과일과 버섯, 유제품, 오메가-3 지방산이 포함된 식품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도 세포 산화를 줄이고 염증을 완화하여 텔로미어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져 세포를 노화시키는 텔로미어. (이미지=미국 NIH)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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