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조기 대선을 닷새 앞둔 29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인하한 배경에는 올해 우리 경제 상황이 예상보다 더 심각하다는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은은 이날 올해 우리나라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석 달 만에 절반 수준으로 낮춰 잡으면서 '0%대 성장'을 공식화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5년 만에 최악의 성장률을 마주하면서 경기 부양을 더는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습니다. 저성장 위기 속 기준금리라도 낮춰 소비·투자만이라도 살려야 그나마 초저성장 충격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절박함이 엿보입니다.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본격 진입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경기 부양 과제를 떠안은 차기 정부의 어깨도 한층 더 무거워졌습니다.
코로나 이후 첫 '0%대'…'최악' 성장 절벽
한은은 이날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2월 '경제전망 수정'에서 발표한 1.5%보다 0.7%포인트 낮은 0.8%로 제시했습니다. 이 같은 전망치는 지난달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한 국제통화기금(IMF)의 1.0%보다 낮은 수준이며,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금융연구원의 전망과는 동일합니다.
앞서 한은은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5월(2.1%), 11월(1.9%), 올해 2월(1.5%) 등으로 지속적으로 낮춰왔는데, 0.7%포인트 이상 하향 조정한 것은 코로나19 때인 2020년 8월(1.1%포인트 하향) 이후 5년 만에 처음입니다. 또 성장률이 1%를 밑도는 것은 외환위기 때인 1997년(-4.9%), 코로나 시기였던 2020년(-0.7%),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을 제외하면 처음입니다.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한 것은 올해 우리 경제 위축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판단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미 지난 1분기 역성장(-0.2%)을 기록한 상황에서 미국발 관세정책으로 본격화한 수출 감소, 내수 회복 지연 등으로 성장률 대폭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한은의 판단입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성장률 전망치 조정 배경에 대해 "건설 경기 침체 심화로 건설투자 감소 폭이 커지면서 성장률을 0.4%포인트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민간소비의 2분기 회복세도 더뎌 성장률을 0.15%포인트 낮췄고, 수출에선 미국 관세율 상승 영향으로 성장률을 0.2%포인트 낮췄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올해 성장 전망에서 눈에 띄는 것은 순수출 부문의 성장 기여도가 '0'이라는 점입니다. 한미 통상 협의 등으로 관세 완화에 대한 낙관적 기대가 현실화해도 성장률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어려워 내수 중심의 회복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때문에 한은은 기준금리라도 낮춰 소비·투자를 살리겠다는 경기 부양의 의지를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어깨 무거운 차기 정부…'경제 살리기' 추경 편성 수순
문제는 2분기 이후 성장 흐름도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 관세 조치 영향은 5월부터 실질적으로 반영돼 수출 감소가 나타나고 있으며, 내수도 장기간 부진에 빠지면서 좀처럼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6월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정책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빨라야 3분기입니다. 여기에 미국과 주요국의 관세 협의 등으로 통상 리스크 완화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한은 역시 대안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을 우려합니다. 우선 낙관 시나리오는 미국이 중국을 포함한 주요국과의 관세 협상을 원만히 마무리하고 연말까지 상호·품목별 관세율을 대폭 인하할 경우 성장률은 기본 전망 대비 0.1%포인트(0.9%)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반면 미·중 무역 갈등이 재점화되고 유예된 상호관세가 일부 복원되는 최악 시나리오에서는 올해 성장률이 0.1%포인트 더 낮아진 0.7%로 전망했습니다.
내년 성장률 전망 역시 암울합니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1.6%로 하향 조정했는데,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년 연속 잠재성장률(2.0%)을 밑돈 적은 없습니다. 이마저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경우 1.2%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게 한은의 예상입니다.
때문에 거시경제 전반이 크게 침체된 상황에서 곧 출범하는 차기 정부의 어깨도 무거울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 부양이 차기 정부의 1순위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통화정책에 맞춰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각에서는 다음달 4일 새 정부가 출범하면 20조~30조원대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서둘러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실제 이재명 민주당·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 모두 집권 후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추경 편성을 한다는 방침입니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미·중 관세 유예 등으로 일시적으로 무역 긴장이 완화된 측면은 있으나 미국의 관세정책 방향성과 협상 불확실성은 여전히 성장 경로에 가장 큰 리스크"라며 "국내 회복세도 정책 효과와 글로벌 여건 변화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내수 침체와 통상 환경 악화로 인해 추경 편성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며 "올해 소비 상황이 너무 좋지 않고 국민의 삶이 어렵기 때문에 취약계층과 중산층의 소비나 투자를 빨리 진작시킬 수 있는 경기 부양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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