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수요 전망(좌)과 예상되는 구리 채굴량(우). (사진=IEA)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저탄소 전환의 상징인 재생에너지 시대에 '구리 쇼크'가 몰려오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35년까지 전 세계 구리 수요가 공급을 30% 초과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이는 전기차·태양광·풍력 등 모든 탈탄소 기술의 핵심 소재로 쓰이는 구리가 중장기적으로 극심한 병목현상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IEA의 파티흐 비롤(Fatih Birol) 집행이사는 “이것은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이제 경고음을 울릴 때”라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구리 확보 없이는 에너지 전환도 없다”는 것입니다. 비롤은 “각국 정부가 공급 다각화와 정제 인프라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선진국은 기술을, 개발도상국은 자원을 제공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구리 정제 중국 독점 구조, 글로벌 리스크로
IEA에 따르면 전 세계 구리 제련의 약 45%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코발트·리튬·망간 등 재생에너지 핵심 원소도 평균 70% 이상이 중국에서 가공됩니다. 이 같은 '가공 지배력'은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공급 부족으로 광물 가격이 폭등했지만, 주요 제련업체의 점유율은 줄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공급 구조가 지정학적 리스크와 만나 녹색 전환의 '약한 고리'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2025년 미국이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구리에 대해서도 수입 조사 방침을 밝히자, 중국은 보복 관세로 대응하면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제련소 경쟁 심화, 공급망 왜곡
공급 부족 우려에도 글로벌 제련업계는 수익성 악화로 휘청이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대규모 신규 제련소 가동으로 정광 확보 경쟁을 벌이며, 현물 처리비(TC/RC)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습니다. 필리핀 파사르 제련소는 결국 가동 중단을 선언했고, 다른 국가들도 연쇄 타격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IEA는 “기존 장기계약 기반 수익도 가격 하락으로 마진이 악화됐다”며 “구리 제련산업 전반이 붕괴 위험에 놓였다”고 진단했습니다. 특히 유럽과 미국의 고비용 제련소들은 이미 다수 폐쇄되거나 축소된 상태입니다.
“17년 걸리는 신광산…지금 당장 투자해야”
구리의 공급난은 단순한 생산량 문제가 아니다. IEA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 구리 광산 프로젝트는 탐사에서 생산까지 17년이 걸립니다. 1990년부터 2023년까지 발견된 239개의 구리 매장지 가운데 중 최근 10년간 전 세계에서 새로 발견된 고품질 매장지는 14곳에 불과합니다. 기존 광산은 등급 저하로 채산성이 떨어지고,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 주요 생산지는 자원 고갈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공급 부족은 불가피한 미래가 아니라, 지금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라며 ▲신규 광산 투자 확대 ▲재활용 시스템 강화 ▲대체 소재 개발 ▲국제 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습니다.
수요는 폭증…전기차만 7배↑
한편 구리에 대한 수요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IEA는 2024년 전 세계 정제 구리 수요를 약 2700만톤으로 추산하며, 2035년엔 3300만톤, 2050년엔 3700만톤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특히 전기차의 구리 수요는 같은 기간 7배 증가해 전체 수요의 10%를 차지할 전망입니다.
중국은 여전히 전 세계 수요의 60%를 차지하고 있고, 인도와 베트남이 빠르게 성장 중입니다. 가디언(Guardian)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청정 에너지로 전환하고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과 같은 청정 기술 부품 제조를 확대하며 전기 그리드 확장을 추진하는 것이 최근 몇 년간 구리 수요 급증의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IEA는 “2050년엔 인도가 세계 3위, 베트남이 4위 수요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며 “산업화·도시화·인프라 개발 등이 수요 증가를 견인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녹색 전환의 최대 리스크는 구리”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구리 공급의 병목은 탈탄소 시대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배터리 원료 가격의 급등은 전체 배터리 팩 가격을 40~50%까지 끌어올릴 수 있으며, 이는 곧 재생에너지 전환의 비용을 폭증시키고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롤 IEA 집행이사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민간의 수익성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한 만큼, 정책적 지원과 국제 협력이 절실하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다각화가 핵심”이라면서 “영국, 유럽, 일본, 미국, 한국에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는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 간 국제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협력을 강조합니다.
구리 수요·공급 예측으로 녹색 전환을 향한 여정에 또 하나의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그것은 ‘기후’가 아니라 ‘자원’입니다. “구리 쇼크 최소화를 위해 지금이 바로 준비할 시간”이라고 강조하면서 ‘다각화’를 촉구하는 IEA의 목소리에 국가간 협력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주목해야겠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의 ‘2025년 글로벌 핵심 광물 전망’. (사진=IEA)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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