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해녀들의 바다, 그 치유의 공간을 담다"
자연 다큐멘터리 30년, 임완호 감독 인터뷰
2025-05-21 09:41:06 2025-05-21 15:02:13
<고래와 나> 수중촬영 장면 (사진= 임완호 감독)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지난해 <극장판 고래와 나>로 큰 반향을 일으킨 임완호 감독을 고래 이야기를 나누려고 만났습니다. “피사체를 찍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고래를 담으려 했다”는 그의 말은 철학자의 고백처럼 느껴졌습니다. <고래와 나>에서 큰 감동을 주었던 혹등고래의 모성 행동에 대한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처음부터 목표는 분명했어요. 혹등고래가 새끼 낳는 장면, 그리고 젖을 먹이는 장면까지 찍자. 이 중 절반만 성공했죠. 새끼가 태어난 지 3~4일 된 장면을 담았지만, 그 출산의 순간은 같은 공간에 있었음에도 놓치고 말았어요. 자연은 인간의 시나리오를 따라주지 않아요. 우리가 따라가야 하고, 그 순간을 ‘만나야’ 하는 거죠.” 
 
고래 얘기를 나누다가 화제가 어느덧 그의 새로운 다큐, ‘인어’ 이야기로 전환되었습니다. 해녀, 그것도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의 해녀 여섯 명을 담은 다큐멘터리 <한국의 마지막 인어들(Last Mermaids of Korea)>입니다. 자연 다큐 30년 경력의 그가 처음으로 도전한 휴먼 다큐멘터리,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으로 그는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해녀였던 그의 어머니를. 
 
“이 작품은 저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고향인 제주 마라도의 해녀들을 3년간 기록했죠. 어머니도 해녀셨어요. 80대 중반인 어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해녀가 되길 원하시죠. 바다에서의 노동이 얼마나 고됐겠습니까. 그런데 그 시절을 이야기하실 때면 오히려 행복해 보였어요. 그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죠.”
 
임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해녀에게 바다는 ‘고된 생존의 공간’인 동시에 ‘치유의 공간’이라는 것을 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해녀들은 물질을 하며 상처를 이겨내고, 바닷속에서 자신을 다시 세웠어요. 그런 삶을 카메라에 담는 건 촬영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작업’이었어요.” 거장의 눈에는 그 함께함의 과정이 촉촉이 녹아 있는 게 느껴집니다. 
 
임완호 감독. (사진=임완호 감독)
 
완성된 작품은 영국의 유명 배급사 ‘Off the Fence’와 계약되어 세계 각국 방송사 및 OTT에 소개될 예정입니다. 미국 몬태나주 미줄라에서 열린 국제 야생영화제 IWFF에서 상영작으로 선정되었고,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제에 직접 참석하진 못했지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된 이 작품을 통해 마라도 해녀들의 삶을 세계에 소개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해녀들에게 바다는 파라다이스이자 치유의 공간이었습니다.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제 목표였습니다. 이 필름을 통해 한국에서 최남단에 있는 마라도 해녀들의 아름답고도 힘든 삶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제 메시지를 듣는 순간에도 마라도 해녀들은 물질을 위해 바다로 나가고 있을 겁니다.” 
 
영화제 상영에 참여했던 어느 한국계 미국인 2세 관객은 SNS에 이런 댓글을 남겼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어요. 이 영화를 보면서 웃고, 울고, 마음이 따뜻해졌답니다...여러분의 작업에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꼭 들어야 할 중요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극장판 고래와 나>를 함께 찍었던 김동식 감독과 임완호 감독은 국내 최초로 8K 수중촬영을 시도함으로써 새끼 혹등고래의 생생하고 신비로운 생태를 담아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늘 갈아 치워온 그의 촬영 장비 사랑을 물었습니다. “자연 다큐에는 많은 장비가 동원돼요. 곤충부터 곰이나 고래, 그리고 조류에 이르기까지 촬영 대상에 맞는 장비들이 필요하죠. 야간에도 촬영해야 하니까 어두운 데 최적화된 카메라도 필요합니다. 혼자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직접 사서 사용해야만 했어요. 계산을 해보지 않았지만 이리저리해서 돈이 생기면 절반은 장비 구입에 쓴 것 같네요.” 
 
국내외 방송 대부분이 HD에 머물러 있고, UHD 방송을 내보내는 방송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도 <고래와 나> 촬영에 8K를 고집한 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 퀄리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지금 사용하는 카메라는 작년에 산 건데 앞으로 5년 이상 이 카메라와 함께할 생각입니다. 이제 카메라 업그레이드를 멈춰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김재연 해녀가 얼굴 만한 전복을 잡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임완호 감독)
 
임 감독은 오는 5월22일 CGV 신촌아트레온에서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춤추는 고래> 상영과 특강을 가질 예정입니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의 TV부문 예술상 수상작 <고래와 나>의 감독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을 꿈꾸는 모교 후배들과 함께하는 자리여서 의미가 깊습니다. 이어 이달 23일과 24일 과천 환경영화제에서는 <고래와 나>와 <반딧불이>가 함께 상영됩니다. 오는 6월에는 프랑스 파리 주프랑스한국문화원에서 제주 해녀 이야기 <Last Mermaids of Korea>가 공개됩니다. 
 
<한국의 마지막 인어들(Last Mermaids of Korea)> 팸플릿. (사진=임완호 감독)
 
자연과 인간, 삶과 기록. 그 사이에서 30년을 걸어온 임완호 감독은 이 일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것을 밝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여전히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해녀든 고래든,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어요. 자연은 여전히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걸 담아내는 것이 내 일이죠.” 그의 말에 단단한 내공이 느껴지는 건 30년이라는 시간의 길이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삶의 숨결을 기록해 만드는 그의 다큐멘터리는 ‘기록’이라기보다는 ‘공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오랜 기다림과 침묵 속에서 만들어진 공감. 그의 따스한 시선은 여전히 바다를 향하고 있습니다. 
 
마라도 해녀와 바다거북. 마라도 해녀들은 바다거북을 만나면 용왕님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다. (자료: 임완호 감독)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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