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를 이용해 만든 '전기차 양방향 충전(Bidirectional Charging)' 개념도.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서울시가 전기차를 '바퀴 달린 배터리'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시의회는 김경 시의원(더불어민주당·강서1)이 대표 발의한 '환경친화적 자동차 보급 촉진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개정안은 전기차를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정의하고, 양방향 충전(V2G: Vehicle-to-Grid)을 도시 전력 시스템에 통합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이는 정부가 추진 중인 양방향 충전 의무화 정책과 궤를 같이합니다. 2026년부터 양방향 충전 기능을 갖춘 전기차와 충전 인프라의 보급을 국가와 지자체가 추진해야 한다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지만, 현실에서는 전력 거래 및 분산 전원 등록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합니다. 서울시는 이번 조례 개정을 계기로 공공 차량 전환과 거점 중심 충전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낼 계획입니다.
'스마터 E 유럽 2025', 전기차 배터리의 역할 재정의
한편, 이달 초 독일 뮌헨에서는 이러한 흐름과 맞닿은 전기차 양방향 충전(Bidirectional Charging)과 관련된 기술과 제도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펼쳐졌습니다. 유럽 최대 에너지산업 박람회인 '스마터 E 유럽(The smarter E Europe) 2025'에서 전기차의 역할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도시 전체를 움직이는 '에너지 허브'로 재정의됐습니다.
행사에는 57개국에서 2700여개 업체가 참가하고, 157개국 10만명 이상의 전문가와 관계자가 방문했는데, 여기서 주목을 받은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양방향 충전이었습니다. 이 박람회에서 발표된 새로운 백서에서는 전기차를 재생에너지의 저장고이자 전력망의 조력자로 규정하며, '양방향 충전은 지능형 에너지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열쇠'라고 평가했습니다.
전기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유연한 에너지 저장 시스템'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시각이 구체화된 것입니다. 백서는 '양방향 충전은 가정과 기업, 전력망 모두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며, 부문 간 통합을 현실로 만드는 기술'이라고 평가합니다. 양방향 충전은 전기차가 배터리 충전뿐 아니라 필요시 전력을 외부로 공급하는 기술입니다. 즉, 낮에 태양광 발전으로 남은 전기를 차량에 저장했다가 저녁 피크 시간대에 가정이나 공공 전력망으로 공급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로 인해 전력 수요의 변동성을 완화하고, 고비용 전력망 확장 없이 에너지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됩니다.
양방향 충전 백서 표지. (사진=The smarter E Europe)
양방향 충전 기술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뉩니다. 외부 기기를 충전하는 차량-부하(V2L),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는 차량-가정(V2H), 기업 건물과 연결된 차량-건물(V2B), 그리고 전력망 전체에 기여하는 차량-전력망(V2G) 모델이 있습니다. 이 중 V2G는 전기차가 피크시간대에 전력을 공급하거나, 태양광·풍력 잉여 전기를 흡수해 이후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어서 중요한 핵심기술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이미 유럽 여러 도시에서는 상용화를 향한 실증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네덜란드 우트레흐트는 2030년까지 공유 차량 전체를 양방향 충전 기반으로 전환할 계획이며, 암스테르담의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는 경기장 전력 수요를 전기차 배터리로 분산·완충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도 각각 르노와 OFGEM 주도로 시장 모델과 기술 표준 정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효과도 뚜렷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에 따르면 양방향 충전 전기차를 활용할 경우, 가정은 연간 최대 727유로(약 106만원)의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으며, 태양광 패널과 결합하면 최대 45%까지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들은 전력 수요가 낮을 때 충전하고, 높은 시간대에 판매함으로써 에너지 거래를 통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걸림돌도 만만치 않습니다. 독일은 스마트 계량기 보급률이 낮고, 전기차의 전력 판매에 이중 과세가 적용되는 등 제도적 정비가 미흡한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양방향 충전이 실효성 있는 기술이 되려면 명확한 규제 체계, 국제표준의 통일, 재정 인센티브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양방향 충전'이 바꾸는 에너지 미래
제조업체들은 이미 선제 대응에 나섰습니다. 폭스바겐, 현대·기아, 르노-닛산, 메르세데스-벤츠, 테슬라 등이 2025년부터 양방향 충전 기능이 탑재된 모델을 잇따라 출시할 계획이며, 유럽연합은 2035년까지 등록되는 전기차의 65% 이상이 해당 기능을 갖추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백서는 결론적으로 '양방향 충전은 재생에너지를 24시간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 체계의 핵심이며, 고정형 저장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합니다.
에너지와 모빌리티의 경계가 사라지는 이 거대한 전환점에서, 전기차가 에너지를 모으고 나누는 존재가 되는 미래가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기차가 '차'를 넘어서서 미래 에너지 체계에서 핵심 자산으로 변화돼, 에너지 전환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은 그 시기만 정해지지 않았을 뿐,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보입니다.
'스마터 E 유럽(The smarter E Europe) 2025' 박람회에 전시된 양방향 충전 시범 차량. (사진=The smarter E Europe)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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