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소품이 있다. 참배와 책사 그리고 단일화. 그간의 경험 때문에 정치희화화이자 후진성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먼저 책사.
“국민통합”이라며 몇 년 주기로 책사가 모셔진다. 대개 그 얼굴이 그 얼굴이어서 “또 그 사람이야?”라는 반응이 많다. 통합 묘수라기보다는 ‘식상한 재활용’으로 받아들여진다. 통합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면 선거와 무관하게 진작 모시는 게 맞다. 꼭 선거 코 앞에 두고 모신다. 엊그제도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이재명캠프에 모셔졌다. 자격증 천국인 한국에는 ‘책사 자격증’이라도 있나 싶다. 30년 전 이회창 총재를 시작으로 김영삼 이명박 문재인을 지나 이재명까지 왔다. 유능하니 캠프마다 탐냈겠지만, 그를 따라다닐 보수표가 얼마나 될지 알아낼 방법은 없다. 정치 희화화와 선거기술로 해석될 수 있는 이런 반복, 정치발전에 기여하는 것 같지는 않다.
“또 그 사람이야?”…책사 ‘자격증’이라도 있나
다음, 참배.
선거때마다 이승만 박정희 묘소참배가 꼭 나온다. 지난 번에는 안갔다느니, 어느 후보는 누구 묘에는 갔다느니, 독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느니…말이 많다. 정체성이나 역사해석/평가에 관한 문제이니 나름 중요한 점은 분명히 있다. 다만, 참배가 선심이나 보여주기같은 걸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서, 선거 목전에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하는 선거기술이나 통과의례로 비친다. 그러니 이 역시 소품에 불과하다. 보수-진보 감별 리트머스시험지가 이승만 박정희만 있을까. 그런데 보수 후보들의 김대중-노무현 묘소 참배는 들어보지 못했다. 보수는 외연확장과 역사재평가가 필요없다는 계산인지….
단일화는 심리적 효과…그 마저도 막연한 추정
마지막으로 단일화.
단일화는 유의어인 중국 고사 ‘합종연횡’에서 알 수 있듯 역사가 깊다. 국내 유명 사례는 1987년 김대중-김영삼 단일화 실패, 1997년 DJP연합, 박원순-안철수 서울시장 단일화,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와 파기, 2022년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등이다.
단일화 성패와 효과는 당사자 간 역학 관계와 지지층, 서로의 정치적 계산능력, 고집 등에 달려있다. 사퇴 후보의 지지표 중 얼마가 단일후보에게 가는지는 오리무중이다. 선거판을 휘감는 ‘바람’과, “대세가 저긴가벼…” 라는 심리적 영역이 더 클 것이다. 그런데 그 심리적 효과, 실은 막연하다.
이번 대선은 한덕수 대행과 국힘 후보간 단일화 여부가 막판 관전포인트 중 하나다. 신당 이준석 후보까지 단일화 우산에 참여할지는 아직 미지수. 단일화는 대표적 정치공학이자 지지 판도의 인위적 변화 시도라는 점에서 논란 요소가 많지만, 드라마틱 요소의 절정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이상 세 가지 소품은 정치발전과 무관하거나, 저해 요인으로 귀납될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소망스럽지 않다. 며칠 전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후보는 소품 중 두 가지를 하루에 다 선보였다. 앞으로 국힘 후보는 누가 될 것이며, 어떤 소품을 어떻게 구사할까. 이런 게 주 관전 포인트가 된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정치가 유권자를 얼마나 객체화시키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책사나 참배같은 기교 말고, 시대정신으로 호소해야
책사나 참배의 실제 득표력은 확인된 바 없다. 사후 추정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꼭 한다. 그냥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는 건 아닐까. 선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거나, 지게 작대기라도 가져다 써야 한다는 말이 있듯, 싸그리 긁어모으는 몸집 부풀리기거나, “우선은 다 내 우산 안으로 들어와!”가 아닌지. 그 원칙없는 이합집산과 헤쳐모여가 무슨 정치적 의미와 외연확장력을 가질까. 10년 전 정청래는 이승만-박정희 묘를 참배한 문재인에 대해 “유대인이 히틀러를 참배한 격”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인가.
참배나 책사같은 기교적 소품 말고, 선거법개정과 기득권포기 등 정치개혁, 개헌, 양극화 완화 방안, 저출생대책 등을 선도하는 게 그렇게 힘든가. 역대 모든 후보들이 너나없이 장난감같은 저런 소품을 만지작거리며 대단한 ‘정치 비급’인양 찧고까불어들대니 “깜냥이 안된다”는 비판이 계속되는 것이다.
30년 전부터 나온 얘기…“정치 수준 높이자”
천인공노할 계엄으로 치르는 대선이다. 세 따라 몰려다니는 이합집산이 아니라, 정치-사회개혁과 민주주의 공고화가 시대정신이다. 국민들은 이번 선거와 판박이인 2017년 촛불정부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난 것에 대해 많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번에 나서는 후보들은 그 문제의식에 제대로 답하기 바란다. 시대정신에 집중하고, 국난 극복해준 국민들께 염치라는 것을 좀 차리기 바란다. 궁중 야합 비사나 권력쟁투 모사 수준으로 떨어트리는 명망가 정치, 이제 그만 하자. 그런 건 정치가 아니라 시청률이 목표인 사극이다. 정치 수준 높이자. 30년 전부터 나온 얘기다. 제발….
이강윤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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