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내란 저지 최전선에 ‘시민’ 있었다
<뉴스토마토> K평화연구원, 3월부터 '시민영웅 찾기' 프로젝트 진행
내란에 항거한 시민 30명 발굴…“과거 계엄 상처 반복 안돼” 한목소리
암 투병 아내와 광화문 집회 참여…노점상들은 ‘어묵포차’ 마련하기도
집회 참석한 부모들 위해 아이 맡길 ‘키즈버스’도 운영…후원금도 쇄도
2025-04-11 06:00:00 2025-04-11 17:34:46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씨가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광장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씨 파면 선고까지 꼬박 123일 동안 시민들은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남태령에서 내란을 막기 위해 온몸으로 맞서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뉴스토마토> K평화연구원은 ‘시민영웅 1천명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난 4개월간 광장을 지켰던 시민들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했습니다. (편집자)
 
“그날 시민들은 자기 목숨을 걸고 (국회로) 나간 거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박종철·김혜경씨 부부는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접하마자 서둘러 서울 여의도 국회로 향했습니다. 대학시절 계엄을 겪었던 박씨는 “1980년대 계엄 당시 군인들이 시민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걸 봤고, 나도 맞아본 경험이 있어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부부는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한 '국회로 와달라'는 호소를 듣고는 용기를 냈다고 합니다.
 
박씨는 “당시에는 정말 우리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다”며 “국회 도착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걸 보고 나서야 좀 안심이 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계엄해제를 결의하고 국인들이 철수하는데, 시민들이 군인들 어깨를 쳐주며 수고했다고 했다. 군인들은 철수하며 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미안하다고 하는 모습을 봤다”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80년대와 다르다는 사실도 새삼 느꼈다는 겁니다. 
 
비상계엄 선포 당일 국회로 향했던 박종철·김혜경 부부가 지난 3월22일 <뉴스토마토>와 당시 상황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번 계엄사태는 많은 시민에게 과거의 아픈 경험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계엄이 선포되자 용기를 내 국회에 모였고, 이후 광장에서 윤석열 탄핵까지 요구했던 겁니다. <뉴스토마토>가 만난 광장의 시민들이 모두 그렇게 용기를 낸 사람들입니다. 
 
신림동에서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안욱현씨는 계엄 당일 배달업무까지 취소하고 국회로 갔습니다. 연세대학교 학생인 장영민씨는 기숙사에서 계엄 소식을 접하고선 고 이한열 열사의 후배로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겠다는 마음에서 그날 국회 앞을 지켰다고 합니다. 우연히 국회로 모여달라는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서 국회로 갔다는 김호씨, 계엄 뉴스에 너무 놀라 무작정 여의도로 향했다는 박미정·장우현씨 부부, 해병대의열단의 강구섭·천세승·박지수·배호성·정덕교 해병도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막아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했습니다.
 
12월4일 새벽 계엄이 해제된 이후 서울 송파구에 사는 박몽선씨는 대장암 투병 중인 아내와 함께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울분을 토해내재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려운 발걸음을 했습니다. 그는 “1979년 광주 사태 때 절친한 친구가 죽어 가슴에 항상 응어리가 졌었다”며 “집회 참석해 목소리를 내는 건 내 가슴에 있는 울분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씨는 “65년을 살면서 단순히 먹고사는 것보다 ‘가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들이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일이라면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일이 필요하다”며 “이번 탄핵 촉구 집회에서 20~30대의 젊은 세대가 무지갯빛 응원봉을 들고 윤석열 탄핵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덧붙였습니다.
 
시민들이 <뉴스토마토>에 비상계엄 당일과 집회 현장을 제보한 사진들. (사진=뉴스토마토)
 
시민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집회에 힘을 보탰습니다. 20개월 된 딸을 키우는 권순영씨는 집회 현장에서 ‘키즈버스’를 운영했습니다. 본인도 집회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딸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가진 다른 부모들도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권씨는 “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아이를 돌보기 힘든 상황이라 현장에 가지 못하는 게 너무 답답했다”며 “집회 장소에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면 좋을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당시 미처 집회에 가지 못한 시민들은 집회 참석자들을 위해서 푸드트럭을 보내기도 하고, 커피 등 주변상가 물품을 선결제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집회를 지지하는 자발적인 활동들을 했습니다. 이에 힘을 얻은 권씨도 ‘키즈버스를 한 번 운영해 보자’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키즈버스 운영 오픈채팅방을 열고 글을 올리자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고 후원금까지 들어왔습니다. 그 이후에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이 동참하면서 결과적으로 키즈버스 2대를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권씨는 “모두 심정들이 다 비슷했다. 뉴스를 보고 답답한 마음에 나도 집회에 머릿수 하나 보태고 싶은데 어떻게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것”이라며 “그런데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생기니까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여유를 가지고 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청년 농업인 김후주씨가 지난 3월25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고개 인근 집회 현장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노점상들이 모인 협동조합에서는 ‘어묵포차’를 열기도 했습니다. 서부지역노점상협동조합 조합원인 임지선·이상옥·정성룡씨는 계엄 당일 국회에 가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집회 현장에서 어묵포차를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임씨는 “계엄이 다시 생길지 상상도 못 했다. 같이 장사하는 사람들 중에 그날 국회 나가신 분도 계셨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생각해 봤고, 시민들이 다들 추운 날 거리에서 고생하는데 따뜻한 음식이라도 나누자는 생각에 조합원들과 힘을 보탰다”고 설명했습니다.
 
충남 아산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청년 농업인 김후주씨는 지난해 12월 남태령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남태령은 서울과 경기도 과천의 경계입니다. 당시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농민들의 상경해 '트랙터 시위'가 벌어졌는데, 농민들의 상경을 막는 경찰들과 대치하며 시민들은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남태령 대첩’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자신의 엑스(구 트위터)를 통해 현장 상황을 다른 시민들에게 알렸고, 이를 본 시민들이 남태령을 찾아 농민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김씨는 “남태령 집회를 계기로 내 계정이 계엄 이후 농민들의 투쟁을 담은 발자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는 심포지엄을 열고 관련 사진과 영상 제보도 받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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